배넌 경질…美 극우주의 정책 방향은 어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주도했던 백악관 수석 전략가 스티븐 배넌이 경질되면서, 그가 추진했던 정책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배넌은 무역 문제뿐 아니라, 기후 변화, 대 중국정책, 이민정책,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미국 정책 전반에서 강경 극우주의적 정책 추진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배넌 경질 후에도 살아남을 그의 정책은

배넌이 경질됐지만 그가 주도했던 모든 정책이 전면적으로 폐기되진 않을 전망이다. 대표적인 게 중국에 대한 지적 재산권 침해 조사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18일 중국이 미국 기업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한 혐의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USTR에 조사를 요청한 지 불과 며칠만이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배넌 없는 미국이 여전히 중국에 대해 강경한 경제노선을 계속 추구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미 정부가 중국에 대한 지적 재산권 침해 조사를 부각시킬 거로 예상했다. 이 사안이 미국 재계와 의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 옹호로 싸늘해진 공화당과 재계의 마음을 되돌려야 하는 백악관 참모진들로선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경제정책을 전면에 드러낼수록 유리하다.

반 이민 정책도 살아남을 전망이다. 백악관 안에 아직 다른 극우성향의 자문가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스티븐 밀러 정책고문이다. 그는 무슬림의 여행 금지를 주도한 대표적인 극우성향의 자문가다. 밀러는 배넌 캠프의 멤버로 분류되는 인물이지만 자신이 배넌의 작품이란 말엔 화를 낼 만큼 독자적인 입지를 추구했다. 지난 18개 월간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의 친분을 이용해 백악관에서 입지를 강화해 왔다.

◇군사 개입주의 강화될 듯…보호무역도 일부 완화

미국의 군사정책은 그의 경질로 '개입주의' 노선이 강화될 전망이다. 배넌은 미국 제일주의에 기반한 대표적인 고립주의자다. 이에 따라 배넌은 시리아 정권을 상대로 한 미사일 공격이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반대했다. 전통적인 미국의 군사관인 개입주의에 반하는 기조다.

미 폴리티코는 그동안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배넌의 퇴출로 ‘개입주의’ 노선에 브레이크가 제거됐다고 평가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다니엘 플레카 외교·국방 담당 부회장은 "배넌의 퇴출로 백악관 내 고립주의자와 개입주의자 간 힘의 균형추는 개입주의자 쪽으로 쏠리게 됐다"고 평가했다.


배넌과 대척점에 있던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입지도 강화됐다. 개입주의자인 맥마스터는 아프간 문제를 두고 배넌과 자주 충돌했다. 일각에선 극우 매체에서 맥마스터가 반이스라엘 주의자라는 보도를 조장한 배후가 배넌이란 추측도 퍼졌다.

벌써 트럼프 대통령이 21일 TV 생중계로 진행하는 대국민 연설에서 4000명 추가 파병 등 새 아프간 전략을 발표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배넌이 떠나자마자 강화된 개입주의 노선이 드러나는 것이다.

무역 문제에서도 공격적인 미국 우선주의적 기조는 어느 정도 누그러질 전망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표적인 보호무역 정책이자, 배넌이 밀어붙였던 철강 수입품 규제를 위한 조사가 중단되는 게 그 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수입 철강제품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미 상무부가 지난 6월 조사보고서 초안을 백악관에 보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발표는 지연되고 있다.

이는 미국 내 반대 여론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계와 학계는 수입 철강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오히려 미국 제조업의 중간재 비용이 오르면서 미 기업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조치를 반대하고 있다. FT는 미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재계의 반대와 공화당의 우려로 조사가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넌, 백악관 밖에서 여전히 영향력 행사할까

배넌이 백악관 밖에서 더 효과적으로 그의 '사상'을 관철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사임 직후 자신이 창간한 극우 성향 매체 '브레이트바트'로 돌아갔다. 이 매체를 통해 정부에서 추진한 주제들을 옹호할 것이란 관측이다. 또 트럼프에게 사적으로 조언할 가능성도 있다. NYT는 "트럼프는 자신의 참모보다 외부인이나 케이블 뉴스 쇼의 조언을 더 존중하는 인물"이라며 배넌이 '장외'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러나 트럼프에 대한 배넌의 영향력이 과대평가됐다는 주장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공식적으로 오래 자문해 온 로저 스톤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과 군사개입에 대한 관점은 1980년대부터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수석 전략가를 역임했던 데이비드 알렉스로드는 "배넌이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빠졌기 때문에 그가 외부에서 정책에 더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결국 많은 게 트럼프가 배논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