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째 '투자시계' 멈춘 삼성전자…지금이 위기다

삼성 서초사옥 /사진=머니투데이DB

"하만 M&A(인수합병)는 '신의 한 수'"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이사회 의결을 통해 미국의 자동차 및 홈 오디오 분야 전문업체 하만을 인수키로 밝힌 뒤 나온 한 증권 업계 반응이다.

인수 총액이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에 달해 국내 기업의 해외기업 M&A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4차 산업혁명기를 맞이해 신성장동력 아이템이 절실한 시점에 당시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는 시간을 벌기 위한 적절한 선택으로 평가됐다.

◇'구글처럼…' 新사업에 왕성한 식욕 보였던 삼성, M&A 올 들어 전무=지난 해만 하더라도 삼성전자는 6월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조이언트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캐나다 스마트TV 관련 업체 애드기어(6월)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7월·지분투자 방식) △미국 럭셔리 가전 브랜드 데이코(8월) △미국 AI 플랫폼 개발 업체 비브랩스(10월) △미국 전장전문업체 하만(11월) △미국의 통신 기술업체 뉴넷 캐나다(11월) 등에 대해 인수합병(M&A)하거나 지분투자했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왕성한 식욕을 보인 셈인데 당시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M&A 전략을 단기간에 성장한 구글의 미래성장 전략에 비견했다. 구글은 1998년 세워져 설립 20년 만에 글로벌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KT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1~2014년 상반기까지 159개 기업을 공식적으로 인수합병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해에 비해 올 들어 삼성전자가 밝힌 굵직한 M&A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사상 첫 총수 공백기를 지나고 있는 데다 계열사간 업무 조정 등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마저 갑작스레 사라진 탓으로 풀이된다.

이미 예정됐던 공장 건설이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M&A를 주도하는 조직인 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를 통해 상시적인 기술투자만이 진행되는 수준이다.

재계 안팎에서 삼성전자의 투자시계가 멈췄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는 하만 인수와 같은 빅딜 사례는 오너의 결정과 적극적인 지원사격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 사장은 본인 결정으로 인해 1000억~2000억원대 손해를 보면 바로 옷을 벗어야 한다(그만 둬야 한다)"며 "누가 목을 거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문제는 생명주기가 짧고 경쟁이 치열한 IT 산업 특성상 현시점에서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2~3년 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현재는 반도체 시황이 좋아 삼성전자 실적이 잘 나오지만 IT 산업 특성상 2~3년 후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얼마나 뒤처질지 아무도 모른다"며 "한창 근육을 키우던 시기에 모든 것을 멈춰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동 걸던 찰나 악재 맞은 삼성…외신도 '우려'=삼성전자는 지난해 대규모 M&A를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관리의 삼성'으로 대변돼왔던 기존 문화에도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댔다. 신사업이 필요해지는 격변기에 구태를 답습해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 정관변경을 통해 이사회 의장직을 사내외 이사 모두에게 개방하는 한편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개최하는 등 '창의와 자발'을 강조한 문화 대수술도 도입했다. 글로벌 기업 CEO 출신 사외이사 추천계획을 밝히는가 하면 각 계열사 이사회 중심의 자발적 경영 청사진도 그렸다.

이어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르는 등 '글로벌 기업다운' 변모를 진행해왔지만 현재 이같은 움직임은 '올스톱(All Stop)' 됐다.

국내 재계 서열 1위 기업이 변화를 멈춘 모습에 해외에서도 우려를 표하며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허핑턴포스트 등 외신 등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정부 시절 중소기업청 수석고문을 지냈던 매트 와인버그는 '삼성, 제2의 소니 되나'란 기고문을 통해 일본 소니가 후발업체들에 순식간에 밀려났던 사례에 주목했다.

그는 "'국정농단 스캔들'로 삼성 고위임원들이 대거 수사를 받으면서 발생한 경영 공백과 내부 어수선한 분위기는 삼성의 글로벌 리더십에도 타격을 입히고 있다"며 "애플, 소니, 화웨이 등 라이벌들이 성공적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스마트폰, VR, TV 등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을 빼앗아 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