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 고요 깨졌다"…글로벌 자금 순유출 왜?

신흥시장 주식·채권 펀드 순유출입액 추이(단위: 십억달러)/자료: 블룸버그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식·채권시장에서 수개월 만에 처음으로 글로벌 자금이 순유출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역풍이 본격화한 것인지, 돌발 악재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반발인지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펀드정보업체 EPFR글로벌에 따르면 신흥시장 주식펀드에서는 지난 16일까지 일주일간 16억 달러(약 1조8000억 원)가 순유출됐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첫 자금 유출로 올 들어 최대 규모였다.

호주뉴질랜드(ANZ) 자료로는 지난달 아시아(중국 제외) 증시에서는 올 들어 처음으로 외국인 자금이 순유출됐다.

신흥시장 채권펀드에서도 1월 이후 처음으로 자금이 순유출됐다. 규모는 79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투자자들은 2013년 이후 최장기 자금 순유입 행진이 끝났다는 데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이같은 통계를 들어 신흥시장의 고요가 갑자기 깨졌다고 보도했다.


신흥시장은 한동안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꿋꿋한 모습을 보였다. FRB의 통화긴축 행보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FRB 의장이 양적완화(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 가능성을 시사한 것만으로도 신흥시장은 '긴축발작'(taper tantrum)을 일으키며 요동쳤지만 정작 FRB가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급기야 금리인상에 나섰을 때도 긴축발작은 재발하지 않았다.

신흥시장을 낙관하는 전문가들은 신흥시장의 체질이 바뀌었다고 평가한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주요 신흥국이 외부 역풍에 대비해 체력을 보강했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을 대폭 늘린 게 대표적이다.

JC 샘버 BNP파리바 자산운용 신흥시장 채권 부문 부대표는 "우리는 아시아가 매우 견실한 기반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성장세가 적당한 수준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WSJ는 신흥시장에서 오랜만에 자금이 순유출되긴 했지만, 상당수 투자자는 신흥시장의 랠리가 끝났다고 단정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한반도 긴장 고조에 따른 불안이 일시적으로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고 본다.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에 이은 인종차별 옹호 발언으로 비난에 직면했다. 국정 장악력이 약해져 투자자들이 기대한 친 성장 공약의 입법이 더 지연될 전망이다.

신흥시장은 원래 변동성이 큰 시장이라는 지적도 많다. 신흥국 자산시장이 한동안 랠리를 펼친 만큼 차익 실현 수요도 컸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신흥시장에서 글로벌 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간 게 심상치 않다고 본다. 마침내 '폭풍전야'의 고요가 깨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비관론자들 사이에서는 FRB의 통화긴축 행보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FRB의 통화긴축으로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면 달러 자산의 투자매력이 커진다. 저금리 기조 아래 상대적으로 큰 수익을 기대하고 신흥시장에 몰린 글로벌 자금이 달러 자산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FRB는 2015년 12월부터 이미 기준금리를 4차례 인상했다. 연내에 한 번 더 올린다는 방침이다. 다음 달에는 통화긴축의 결정판인 '양적긴축'에도 나설 전망이다. 양적긴축은 양적완화로 불어난 자산을 축소하는 걸 말한다.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BOE), 캐나다 중앙은행(BOC) 등도 이미 통화긴축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요 중앙은행의 통화긴축은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 금융시장을 떠받친 저금리 자금의 공급이 끊기는 걸 의미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간의 통화긴축 행보가 더디고 예상 가능해 시장을 놀라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점이라고 WSJ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