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막판 변심? '한·미·일 연합' 반도체 인수 제동

사진=블룸버그

SK하이닉스 (173,300원 ▼9,000 -4.94%)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의 일본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도시바는 지난 6월 SK하이닉스와 일본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 미국 PEF(사모펀드) 운용사 베인캐피털 등이 참여한 한·미·일 연합을 ‘도시바메모리’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나 제휴사인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반발로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지지통신 등에 따르면 도시바는 최근 이달 중 최종 타결을 목표로 WD와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위한 막판 협상에 돌입했다.

WD측에는 한·미·일 연합 일원인 INCJ와 미국 PEF 운용사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이 포함됐다. 이들은 인수가로 1조9000억 엔(약 19조6000억 원)을 제시했다. 한·미·일 연합이 내놓은 가격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는 WD가 이미 도시바와 합의한 대로 도시바메모리에 대한 자산실사를 벌이고 있다며 다음 주에 매각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도시바가 이사회의 승인을 얻으면 이달 중에 최종 매각 계약을 맺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WD가 제기한 소송이 도시바의 변심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WD는 도시바메모리 매각엔 자사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의 중재를 요청했다.

중재재판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 도시바를 부담스럽게 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중재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 반에서 2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 반도체 사업을 매각해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내년 4월 전에 채무초과 상태에서 벗어나려던 도시바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도시바가 내년 3월까지 채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일본 증시에서 퇴출당한다.

더욱이 도시바가 매각 합의를 이뤄도 관련국 규제 당국의 반독점 심사만 6~9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달 중에 합의를 이뤄도 일정이 빠듯하다.

니혼게이자이는 중재재판소가 WD의 주장을 인용해 도시바메모리 매각 금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남아 있어 도시바와 이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미·일 연합의 본협상이 난항을 겪어왔다고 지적했다. 도시바 입장에서는 WD와 화해하는 게 반도체 사업 매각에 속도를 내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일본 정부(경제산업성)도 도시바메모리의 조기 매각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한·미·일 연합을 지원했던 INCJ와 일본 정책투자은행이 WD·KKR 연합으로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이다. 일본 정부는 당초 전략사업인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이 중국보다는 동맹국인 미국에 넘어가는 게 낫다는 입장이었다. 일본 내에서는 SK하이닉스가 빠진다는 것만 빼면 한·미·일 연합과 WD 연합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시각이다.

WD는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하기 위해 의결권이 없는 회사채 수천억 엔어치를 발행해 20% 미만의 의결권을 손에 넣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는 도시바가 WD와 인수액이나 출자비율 등에 끝내 합의하지 못하면 한·미·일 연합과 다시 협상을 추진하고 증자를 통해 초과 채무 해소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