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억·역사 보존"…문화비축기지, 서울시 도시재생의 새로운 모델

지난 1일 문을 연 문화비축기지 전경/사진=서울시 제공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스트렐카 전문학교(Strelka Institute). 차도를 줄이고 보도를 넓혀 보행친화적 거리를 조성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 '나의 거리'를 전담 추진하는 곳이다. 이 곳은 주변 역사와 문화, 지역주민 의견을 반영해 도시재생 모델을 만들어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여기에 민간의 다양한 코디네이터와 전 세계적 네트워크까지 구축하고 있다. 지난 6월 이 곳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스트렐카의 도시재생 모델은 비전이나 전략이 서울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지난 1일, 60년만에 시민들에게 개방된 '문화비축기지'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도시 재생모델로 꼽힌다. 녹슨 유류탱크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총 1126명의 시민(설계 자문 568명, 워킹 그룹 558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협치 사례'로 거론된다. 또 무조건 철거 후 개발했던 과거 공공건축과는 달리 옛 것의 독특함을 유지해 역사를 보전한다는 점에서 서울 공공건축의 새로운 모델을 실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문화비축기지의 각 탱크들은 주황색 화강암 옹벽을 외관에 그대로 사용했다. 자칫 처음엔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거친 표면 등 날것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독특한 외관을 만들어냈다. 설계 총괄을 맡은 허서구 한양대 전 교수는 "장소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내고 원형을 보존했다는 점에서, 본래 있던 재료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비슷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문화비축기지가 완공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기존 형태를 유지·보존해야 하다보니 1976년 준공 당시 설계도가 필요했는데, 공사 시작 전에 찾지를 못했다. 따라서 탱크 주변 옹벽과 흙을 조금씩 파내 땅속에 묻혀있는 원형을 추측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본격적인 설계에 들어간지 5개월 후인, 2015년 1월 경북 청도에 위치한 서울시 기록물보관소에서 어렵게 설계도를 찾아냈다.


이지원 감리단장은 "원형 설계도가 없는 상황에서 공사를 하다 보니 중간에 설계를 변경하는 일이 많았다"면서 "5번 탱크 주변 공사를 하다가 20톤 이상의 낙반이 발생하면서 경량 철골을 콘크리트로 구조로 바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지 내 임시주차장 사용 권한을 두고 약 200대의 대형트럭·관광버스 기사들과 부딪히기도 했다. 일부 부지가 마포구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주차장으로 사용되다가,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서 폐쇄됐기 때문이다. 이에 기사들은 '다른 부지를 마련해주고 나가게 해달라'고 반발했고, 서울시와 마포구는 사전에 공지했다는 점과 기존에 받은 주차비를 모두 환불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갈등을 봉합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설계 시작부터 끝내기까지 애로사항이 많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마침내 완성해 시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비축기지에서는 오는 24일까지 '2017 서울건축문화제'가 열린다. 열린강좌, 나만의 건축드로잉 등 시민참여프로그램과 총감독 주제전, 스토리텔링전, 서울시 건축상 등의 전시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지진 가상현실체험관(VR)과 1대1 비율 건축물을 통해 미래 건축물을 체험하는 '미래 건축주택전시-Future House 2020' 등 관람객이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체험형 프로그램도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