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지는 로드맵, 표류하는 文정부 ‘정규직 전환’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으로 현장의 혼란을 풀어줘야 할 정부가 오히려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한 결과다. 당초 전환 목표를 크게 축소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이번 달 안에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로드맵에는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 규모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의 세부 내용이 포함된다.

현재 개별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결정이 늦어지는 것은 로드맵 지연과 직결된다.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규직 전환을 서두르라고 재촉하지만 공공기관들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모호해 문제 발생 소지가 다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에서 정규직 전환 우선 대상을 852개 공공기관 근로자 184만 명 가운데 기간제 근로자·파견용역 근로자 약 31만 명으로 설정했다. 해당 업무는 △연중 9개월 이상 상시·지속성 업무 △앞으로 2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 △생명·안전과 밀접한 업무 등이다.

하지만 ‘상시·지속성 업무’나 ‘생명·안전과 밀접한 업무’ 등에 대한 해석이 이해당사자 별로 다양해 혼선이 커지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부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을 철회한 것처럼 기관 내부에서도 이해관계의 충돌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가이드라인에 따른 비정규직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기 어렵다는 것이 공공기관들의 일반적 반응이다.

나아가 대부분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성격상 예산지침을 수반하지 않은 정책은 공공기관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가이드라인의 불명확성은 정부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분명하지 않다는 공공기관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규직 전환 가능 규모 등 보다 명확한 지침을 내놓을 수 있도록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현실의 벽’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양’에 연연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질’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문재인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으나 정책의 영역에서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다른 측의 양보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로 정규직 전환 규모만 늘리겠다는 접근법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로드맵에 다양한 사회적 담론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당초 목표보다 다소 늦어졌으나 가능한 빠르게 로드맵을 확정해 혼란을 최소화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