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살뜰히 챙기는 경제부총리 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현안간담회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생일을 맞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생일 케이크를 선물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부총리와 한은 총재가 이렇게 친해 보일 때가 있나 싶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최근 행보를 한 통화 당국자가 이렇게 평했다. 공조 관계에도 긴장감을 유지했던 두 기관이 김 부총리 취임 이후 달라졌다는 얘기가 많다.

지난 14일 김 부총리가 주재한 경제현안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깜짝 생일 케이크를 선물 받았다. 이 총재 음력 생일을 알게 된 김 부총리 아이디어였다. 금융위원장, 국토교통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부처 핵심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가계부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과거 정부의 비공개 서별관회의를 대체하는 상징적 회의체에서 망중한(忙中閑)을 빌려 이 총재와의 친밀감을 강조한 것이다. 기재부는 회의 참석자들이 이 총재를 축하해주는 사진을 이례적으로 취재진에 공개했다.

공식 회의가 끝난 뒤에도 두 인사는 따로 20여분간 케이크를 나눠 먹으면서 경제 현안을 논의했다.

김 부총리의 이 총재에 대한 배려는 이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도 나타났다. 한·중 통화스와프 관련 질의가 이어졌고 이 총재가 “당장 밝히기 어렵다”고 난처해하자, 김 부총리는 곧바로 “언론에서 이 문제를 예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들었다.

특히 김 부총리는 “(한·중 통화스와프는) 한은에서 실무 협의를 열심히 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주요국 통화스와프는 정부가 협상을 주도한다는 통념을 깬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ㅈ난 6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을 예방, 이주열 총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김 부총리의 한은 챙기기는 취임 직후부터 계속됐다. 그는 임명 나흘 뒤인 6월 13일 세종청사 취임식에 앞서 한은을 방문해 이 총재와 만났다. 전임자들이 첫 만남에서 실무진을 대동한 것과 달리 김 부총리는 이 총재와 단독 회동했다. 김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총재를 존경한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 총재는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화답했다.

두 인사는 두 달 만인 8월 16일 다시 만났다.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금융시장 동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사안의 시급성을 느낀 김 부총리가 이 총재에게 만나자고 요청해 성사됐다. 이날 회동을 마친 뒤에도 김 부총리는 한은 입장을 대변했다.

김 부총리는 당시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1.25% 기준금리가 너무 낮다”고 발언해 시장금리가 움직인 것에 대해 “정부의 누가 됐든 금리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한은 독립성에 좋은 얘기가 아니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옆에 있던 이 총재도 “부총리와 생각이 같다”고 동의했다.

김 부총리는 지난달 28일 국회 현안보고를 마친 뒤에도 이 총재에게 긴급 저녁 만찬을 제안해 양 기관 고위 관계자들과 함께 만났다. 사흘 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통화정책회의가 예정된 민감한 시기였지만 이 총재는 김 부총리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인사의 신뢰 관계가 증명된 자리였다.

일각에선 김 부총리의 이런 행보가 정부 내 입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올해 세법개정안에 김 부총리 의도와 달리 소득·법인세 증세안이 포함되자 이른바 ‘김동연 패싱(건너뛰기)’ 논란이 제기됐다. 여당과 청와대가 경제 컨트롤타워인 김 부총리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불똥은 최근 부동산 보유세 논의까지 옮겨갔다.

이런 상황에서 김 부총리가 거시경제 양대 축이자 통화정책 수장인 이 총재와 긴밀한 관계를 강조해 ‘경제 컨트롤타워’ 위상을 세우려는 의중도 적잖다는 해석도 있다. 김 부총리는 최근 새 정부 소득주도성장론과 함께 경제를 이끌어가는 두 축으로 혁신주도 성장을 강조하는 등 본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총재는 최근 국제컨퍼런스에서 혁신 성장 중요성을 언급해 김 부총리에 힘을 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