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의 '돈풀기' 마침표…美 연준, 10월부터 자산축소 전망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자산축소에 시동을 걸 전망이다.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시중에 대규모 자금을 풀기 시작한 지 9년 만에 '정상화'의 길로 들어선다.


FRB는 자산축소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로 억제하기 위해 최대한 느리게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수천조 원에 이르는 자산을 줄이는 건 세계 금융 역사상 처음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FRB가 성공적으로 (양적 완화라는) 특별한 정책실험을 마무리한다면 유럽과 아시아의 다른 중앙은행들도 이를 따를 것"이라면서도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세계 경기 회복세를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최대한 천천히 진행…1~2조 달러 가량 줄어들 듯

FRB 자산은 지난 13일 기준 4조4712억 달러(약 5053조8000억 원)에 이른다. 대부분은 미국 국채(2조4000억 달러)와 주택저당증권(MBS, 1조8000억 달러)이다. 미국 국채의 29%, MBS의 17%를 중앙은행이 보유한다.


FRB가 이처럼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게 된 이유는 경기 부양을 위해서였다. 제로(0%) 금리에도 경기가 부진하자 추가 부양을 위해 돈을 찍어 국채와 MBS를 대거 사들였다. 2008년 8월 9000억 달러 미만이던 FRB 자산은 불과 석 달 만인 2008년 11월 2조2000억 달러대로 뛰었다.

FRB는 오는 19~20일 통화정책 정례 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진행하고, 자산축소 시작 시기를 결정할 전망이다. 당장 다음 달부터 자산축소에 나설 것이라는 게 시장의 예상이다.

WSJ에 따르면 FRB는 만기 도래 채권을 소멸시키는 방법으로 자산을 축소한다. 처음에는 매달 MBS 40억 달러, 국채 60억 달러 감소로 시작해 분기마다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최종 단계에서는 축소 규모가 매달 MBS 200억 달러, 국채 300억 달러로 늘어난다. 이런 과정이 6년 정도 진행된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의 리처드 클라리다 전략가는 FRB의 자산 축소 계획에 대해 "원래 하루에 3번 먹던 디저트를 2번만 먹으면서 몸무게를 줄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연준이 어느 정도까지 자산을 줄일지는 미지수다. 시장에서는 1조~2조 달러 정도의 축소를 예상한다. 뉴욕 연방은행의 윌리엄 더들리 총재는 이달 초 연설에서 "연준의 자산 규모는 향후 몇 년 내 2조4000억 달러에서 3조500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7월 12일 미국 하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옐런 의장은 이날 "연내 보유자산 축소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AFPBBNews=뉴스1

◇ '긴축발작' 가능성 작아…옐런 의장의 마지막 시험대

FRB의 자산축소는 매우 천천히 진행될 전망이다.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전문가들도 글로벌 금융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거로 전망한다. 예견된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수는 여전히 많다. 세계에서 거의 처음 진행되는 대규모 유동성 흡수라는 부담이 크다. 세계 어느 중앙은행도 이렇게 많은 자산을 수년간 모았다, 다시 시장에 풀어본 적이 없다. 전례가 없어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WSJ은 "재닛 옐런 의장의 자산축소는 FRB의 양적 완화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마지막 시험이 될 것"이라며 "만약 자산축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미래 경기침체 국면에서 다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긴축발작'(taper tantrum) 우려도 여전하다. 긴축발작이란 양적 완화 정책이 긴축으로 전환될 때 금융시장이 겪는 충격을 말한다. 2013년 5월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 의장의 후임인 벤 버냉키 전 의장이 양적 완화 축소 가능성을 거론한 일을 계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신흥국가 통화가치와 주가가 동반 하락하는 충격이 발생했다.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지난 7월 "중앙은행 통화 긴축으로 인한 충격이 시장 예상보다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매튜 조조프 JP모건 MBS 투자전략가도 "중앙은행이 1조 달러 이상의 MBS를 줄이는 것을 본 적 없다"면서 "어떻게 진행될지 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적 완화의 점진적 중단은 FRB만의 고민이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중앙은행들도 출구전략 시작 시기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FRB의 자산축소는 다른 중앙은행들에 좋은 선례가 될 전망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기회이기 때문이다. WSJ은 "다른 중앙은행들이 FRB의 자산축소를 주목한다"면서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은 내년 자산 구매 규모를 줄이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영란은행(BOE)의 금융통화위원이었던 다트머스대학의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 교수는 "중앙은행들이 자산매입에 대해 정확히 몰랐듯, 출국전략도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