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1년 ①] "명확한 제한 규정 덕분에 떳떳해졌다"

(서울=뉴스1) 김다혜 기자,한재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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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끔 좋게 거절할 명분이 생긴 점이 제일 좋아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는 김모씨(28·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생겨 오히려 편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공유하는 분명한 원칙이 생겨서다.


김씨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물을 건넬 때 김영란법을 얘기하며 거절하면 다 이해한다"며 "인정을 저버리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공직자·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 등이 직무 관련자로부터 식사·선물·경조사비 각 3·5·10만원 이하 외에는 대가성이 없는 금품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등 내용을 담은 김영란법이 오는 28일 시행 1주년을 맞는다.

법을 어길 경우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 과태료를 물어야 하지만 오히려 규제 대상자 가운데서도 환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부담 없이 선물이나 부탁을 거절할 수 있고 눈치 안 보고 선물이나 접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언론사 기자인 김모씨(27·여)는 얼마 전 제보자가 "교통비나 하시라"며 돈봉투를 내미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렸다. 김씨는 "날 뭐로 보는 건가 싶어 불쾌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취재원과 관계가 틀어질 것 같았다"며 "김영란법이 좋은 핑곗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잘 봐달라며 경찰관에게 음료수를 내미는 민원인들도 사라졌다.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A경정은 "예전엔 거절하는데도 두고 가서 청문감사관실을 통해 돌려줬는데 그러면 상대방도 머쓱해 하곤 했다"며 "김영란법 덕에 저희도 불편한 것이 없어지고 시민들 부담도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로비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여파로 각 의원실로 배달된 추석 선물이 예년보다 현저히 줄어있다. 2017.9.2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선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도 김영란법이 반갑긴 마찬가지다. 스승의날이나 명절을 앞두고 '우리 아이만 선물을 준비하지 않은 게 아닐까' '선물이 너무 소박한 게 아닐까' 고민하던 학부모나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영란법을 계기로 선물을 안 주고 안 받는 문화가 강해지면서 이들의 부담도 줄었다.

한 대학교 학회의 회장인 김모씨(25·여)는 지난 스승의 날 회원들 여럿이 돈을 모아 지도교수에게 3만원짜리 차(茶)를 선물했다. 지난해 넥타이 선물보다 절반 이상 저렴하다. 김씨는 "교수님이 선물하지 말라고 선수를 치셨다"며 "그 덕분에 금액보다는 마음을 표하는 데 더 의미를 두게 됐다"고 말했다.

7급 공무원인 김모씨(26·여)는 "외부에서 선물을 일절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내부에서도 상사 등 결재권자에게 선물하는 게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며 "경조사비도 정해져 있으니 눈치 안 봐도 되고 아랫사람 입장에서 편하다"고 말했다.

박중훈 한국행정연구원 행정관리연구부장은 이처럼 김영란법 규제 대상자들이 규제를 환영하는 이유는 "명확한 제한 규정 덕분에 오히려 위축되지 않고 떳떳하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박 연구부장은 "예전에도 공무원 행동강령이 있었지만 김영란법으로 사회적 이해와 공감이 커졌다"며 "예전에는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웠던 부탁에도 이제 '잘못하면 당신도 나도 다친다'라고 자기방어를 확실하게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접대문화가 줄어들어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생겼다는 점도 김영란법의 긍정적 파급효과로 꼽힌다. 서울의 한 대학 홍보팀에 근무하는 A씨는 "저녁 식사가 절반 정도로 많이 줄어 퇴근 이후 여유시간이 늘었다"며 "먹는 데 쓰는 돈을 다른 홍보 활동에 쓸 수 있게 된 점도 긍정적인 면"이라고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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