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데 덮쳤다"…실종된 양주회식, 매출 직격탄

"김영란법 이후에 손님이 약 20% 줄었어요. 회식 때 양주를 찾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회식을 안하니 막막합니다." 서울 강남에서 룸살롱을 운영하는 A씨는 한숨이 늘었다. 직원을 줄여 버티고는 있지만 앞날을 장담하기가 어렵다. A씨는 "우리 매장에서 나가면 갈 곳이 없는 걸 알지만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며 "유흥업소가 아무리 음지라지만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1년 지나면서 위스키 업계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비싼 위스키를 찾는 수요가 줄어든 가운데, 식사·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을 각각 3·5·10만원으로 정한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특히 위스키 주요 판매처인 유흥업소는 회식이 줄면서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24일 한국주류협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위스키 출고량은 76만7243상자(1상자=500ml×18병)를 기록했다. 김영란법 시행 전인 지난해 상반기(80만1349상자)보다 4.3% 감소했다. 이 상태가 유지될 경우 올해 연간 출고량은 160만 상자에도 못 미쳐 9년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위스키 시장은 2008년 284만1155상자로 고점을 찍은 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장의 위기감은 더욱 크다. 위스키 출고량만 따져보면 한 자릿수 줄었지만 실제 소비자 판매량은 두 자릿수 이상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저도주 트렌드에 홈술·혼술족까지 늘면서 가뜩이나 어려웠는데 김영란법이 업계 불황을 가속화했다"며 "위스키 시장 바닥이 어디일지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위스키 주요 판매처인 룸살롱 등 유흥업소는 김영란법 시행 후 매출이 눈에 띄게 급감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모임이나 송년 회식 등에서는 양주를 먹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김영란법 이후 아예 사라졌다.


강남 일대 룸살롱들은 직원 2~3명을 줄이는 한편 '박리다매' 전략을 쓰는 곳까지 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강남 압구정동과 선릉역 일부 룸살롱은 위스키 판매가를 출고가 수준까지 낮춰 판매한다"며 "주변 업소에 지탄받으면서까지 위스키 가격을 손댄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업계 불황이 심화하자 위스키업체들도 시장점유율 회복을 위해 세븐팩 패키지와 소용량 제품들을 잇따라 출시했지만 반응은 미미하다. 지난해 페르노리카가 세븐팩 프로모션을 처음 전국으로 확대해 시행한 후 디아지오코리아(윈저 W ICE), 롯데주류(쥬피터 마일드 블루)가 뒤따라 프로모션에 뛰어들었고 하이트진로(더클래스)는 심지어 6병을 구매하면 2병을 공짜로 주는 에잇팩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지난 8월에는 업계 1위인 디아지오코리아가 세븐팩 패키지를 출시하기도 했다. 1박스당 6병인 구성을 7병으로 늘리고, 병당 가격을 낮춰 판매 증진 효과를 꾀한 것이다.

대신 판매 단가가 낮은 소용량, 저가제품 판매만 늘었다. 디아지오코리아에 따르면 조니워커 레드 200ml는 올 상반기 출고량이 전년 대비 72% 급증하며 나홀로 성장세를 보였다. 대형마트를 주력 채널로 하는 벨즈(Bell's) 등 저렴한 위스키들도 매출이 좋다.

한 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은 우는 위스키업계의 뺨을 때린 격"이라며 "원가가 비싼 위스키 등 업계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3·5·10만원'으로 상한액을 정한 김영란법은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