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엔 뭘 읽을까…"고민하지 마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10일간의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여행 갈 엄두는 안 나지만 누구보다 알차게 보내고 싶은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출판업계 전문가들이 선정한 분야별 추천도서를 소개한다. 좋아하는 장르별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별로 골라 읽는 책 한 권이 긴 연휴를 풍성하게 채워 줄 것이다.

①[미스터리]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추천 "명절스트레스, 오싹하게 날려드립니다!"


◇'안 그래도 아비규환'/스티븐 킹 외 지음

'추석'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린 시절 명절 때마다 받았던 '종합선물세트'다. '안 그래도 아비규환'은 스티븐 킹, 마이클 클라이튼, 닐 게이먼 같은 쟁쟁한 작가들이 포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소설집이어서 마주하는 내내 즐겁다. 특히 '열다섯 살 소년이 대관절 어떻게 여자와 한 침대에 눕게 되었는가'에 관해 고찰한 닉 혼비의 단편은 꼭 읽어보시길.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추석은 한편으론 싫어하는 직장 상사, 잘 보여야 하는 거래처, 존경하고 싶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진상할 '뇌물' 때문에 괴로운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분들에겐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가 제격이다. 모듬요리처럼 종합적인 맛을 제공하는 작가 하타케나카 메구미가 먼 옛날 전문직의 뇌물 매수, 접대 등의 뒷공작과 그 비법을 경쾌하게 풀어 답을 알려주니까.


◇'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 미아 키 스가루 지음

추석 괴로움의 결정판은 뭐니 뭐니 해도 “취직은?”, “결혼은?”, “아이는?”으로 이어지는 3단 콤보 질문세례가 아닐지. 이 때문에 번뇌에 시달릴 운명이라면 미리 판타지 소설 '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를 준비해 놓도록 하자.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복수하는 초능력 소녀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아픈 마음을 살짝 어루만져 준다고 할까.


②[인문교양] 임태주 행성B 기획실장 추천 "가을엔 느껴보아요, 인문학의 향기"

◇'플러그를 뽑으면 지구가 아름답다'/ 후지무라 야스유키 지음

이 책은 이렇게 요약된다. "사람이 전기를 낳았다. 전기가 편리를 낳았다. 편리가 비만을 낳았다. 사람이 전기를 늘렸다. 전기가 이산화탄소를 늘렸다. 이산화탄소가 귀찮음을 늘렸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청소기, 세탁기, 냉장고, 전기포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편리와 쾌락이 낳은 산물들이 우리의 많이 즐거운 삶을 어떻게 조금 즐거운 삶으로 망쳐가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사람들아, 이대로 좋은가?

◇'은유가 된 독자'/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독서를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로 은유한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세계문학의 숲을 종횡무진 누비며 깊고 명쾌하게 말한다. 나는 여행자의 은유가 좋았다. 이곳을 떠나 저곳을 여행할 때, 여행자는 이곳에서 부재하고, 머무를 수 없는 저곳의 공간에 한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독서는 우리를 유목민으로 떠돌게 만든다. 소설가 장강명은 '진지한 독자'라는 멸종위기종의 일원으로서 위로받는 기분으로 읽었다고 이 책에 대해 썼다. 책 좀 읽는, 얼리어답터 독자 필수품이다.

◇'언어 공부'/ 롬브 커토 지음

외국어는 여전히 스트레스다. 저자는 알수록 기분 나쁜 사람이다. 독학으로 16개 언어를 익힌 헝가리 사람이다. 스무 살이 넘어서 어학연수를 가지 않고 외국어를 배운 자신의 경험을 에피소드를 넣어 정리한 책이다. 학습법은 보통 자신만의 비법이 있게 마련인데, 이 책에는 많은 이에게 통용될 만한 유용한 원칙들이 소개돼 있다. 언어를 배우는데 재능은 필요 없다는 말이 위안이 된다. 언어는 관심과 동기가 중요하니 맹렬하게 돌진하고, 먼저 맛부터 보라는 부추김이 열기에 기름을 붓는다.


③[정치·사회]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추천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나"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플라톤의 '국가'와 함께 꼭 읽어야 할 책. ‘정치학’이란 말의 기원이 되기도 한 책이다. 중역이 아닌 희랍어 원전을 번역하고 꼼꼼한 각주를 달았다. 고대에는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한 윤리학과 ‘좋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정치학이 하나였다. 지금도 그래야 하지 않나?

◇'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정치의 타락 밑에는 반드시 지성의 타락이 있다. 극우 보수주의가 어떻게 반지성주의를 조장하고 그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실용적 현실주의는 한국의 세속적 출세주의와 바로 맞닿는다. 한국 사회에 퍼지고 있는 반지성적 경향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김건우 지음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민주화 진영에는 사실 한 뿌리에서 나온 인사들이 있었다. 친일을 하지 않은 ‘양심적 우익’ 세력이 그들이다. 안창호 이후 서북 기독교인과 학병 출신으로 이뤄진 이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진짜 우익들을 발견할 수 있다.


④[과학] 한성봉 동아시아출판 대표 추천 "고귀함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문어의 영혼'/ 사이 몽고메리 지음

해괴하고도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인 문어는 이 책에서 고귀한 영혼을 가진 한 인간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간만이 삶의 고통과 기쁨과 인생에 대한 논할 수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 조너선 밸컴 지음

물고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한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뇌가 있는 인간만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인류의 오래된 편향을 과감히 깨버린다.

◇'시티 그리너리'/ 최성용 지음

풀벌레와 곤충과 산새들에서 철학적 존재론을 발견하는 책.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뜻밖의 생명의 신비. 가족이 함께 찾아보는 아름다운 도시 생태 이야기다.


⑤[역사] 장인용 지호출판 대표 추천 "때때로 답은 과거에 있다"

◇'오래된 서울'/ 최종현·김창희 지음

인왕산 기슭의 서촌은 상당히 긴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고려 말의 남경에서 시작하여 조선 초 세종이 태어난 곳이고, 광해군과 선조, 안동 김씨,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에 이르기까지,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에서 깊숙한 역사를 맛볼 수 있다.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메리 비어드 지음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몰락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비어드의 이 책은 로마제국의 흥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미약하고 작은 나라가 거대한 제국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결코 우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제국의 흥성 또한 몰락만큼 흥미진진한 주제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신상목 지음

우리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상처 때문에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려 하는 일본 막부시대에 어떤 과정을 거쳐 현대 일본의 기초를 닦게 되었나를 보여준다. 민족이란 안경을 쓰고 보지 않으면, 진실은 가을 하늘 아래 붉은 단풍처럼 또렷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