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갈등 여파…한·중 통화스와프 9년 만에 종료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일 오전(현지시각)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됐던 한국과 중국의 통화스와프 계약이 결국 9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해말 북핵 위협에 대응해 우리나라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한 뒤 양국 외교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 영향이 컸다.

9일 정부, 한국은행에 따르면 560억달러(3600억위안/64조원) 규모의 한·중 통화스와프 계약이 추가 연장 없이 10일 종료된다.

정부와 한은은 올해 초부터 ‘정경분리(政經分離)’ 원칙으로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외교 갈등의 벽을 넘지 못했다.

통화스와프는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약정된 환율에 따라 교환할 수 있는 협정이다. 계약기간 외화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한국은 위안화를, 중국은 원화를 한도만큼 빌려 쓸 수 있다.

이번에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이 만기일 내에 불발되면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체결한 통화스와프 규모는 미국 달러화 환산시 1222억달러에서 662억달러로 절반 가량 쪼그라들었다.

한·중 통화스와프는 비록 달러화를 직접 융통할 수 없지만 단일 협상 건으로 계약 규모가 가장 컸다.

최근 위안화가 국제결제 통화로 위상이 높아지는 추세여서 양국 통화스와프 종료시 우리나라의 경제적 손실이 더 크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와 한은은 추후 재협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특히 우리 측에서 먼저 “통화스와프 계약이 종료됐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 오른쪽)가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와 14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제9차 한중일 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은행

실무 협상을 총괄했던 이주열 한은 총재도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한·중 통화스와프와 관련한 구체적인 답변을 자제했다.

그는 이날 오후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중 통화스와프 진행 상황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여러 상황을 모두 고려한 결과 당분간은 노코멘트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라고 답했다.


그는 “(취재진이) 궁금해하는 것과 질문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현재로선 (연장 여부 등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래서 양해해달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와 한은은 공동 명의로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한·중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과 관련해 당분간 현재 상황에 대해 확인해 줄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 총재는 “10일이 되면 기존 계약은 종료되는 것”이라며 “통화스와프 계약이 신규냐 재연장이냐는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만기가 종료됐지만 향후 추가 협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한‧중 통화스와프가 종료되더라도 당장 국내 금융시장에 큰 충격은 없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국내 외환보유액이 올해 8월말 기준 3848억4000만달러로 역대 가장 많은 수준이고, 국내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받아야 할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도 4231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대외건전성이 양호하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연내 미국 연준(Fed)의 보유자산 축소, 추가 금리인상 등 긴축 정책으로 국제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에 대비해 최대한 금융안정망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보다 외환보유액을 더 충분히 쌓고, 중국 이외에도 다른 주요국들과 통화스와프 계약 추진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중 통화스와프 재연장이 안된 것도 사드 배치 보복에 따른 피해로 볼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동맹국인 미국이나 일본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통화스와프를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일본은 한국 등 비기축통화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선호하지 않아서다.

앞서 미국과 체결한 300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도 결국 2008~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한 한시적 조치였다.

일본과 최대 700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던 기간이 있었지만 외교갈등으로 점차 규모가 축소됐고 2015년 2월 전면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