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모습 보인 이재용 부회장…前 임원진과 담담한 재회

법원에 출석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홍봉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한 달여 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8월 말 법정 구속된 삼성 전직 수뇌부들도 출석했으며 오랜만에 재회하게 된 이들 사이에는 담담하면서도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12일 오전 10시부터 이 부회장과 전직 삼성그룹 수뇌부들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지난 8월 25일 1심 선고 이후 피고인들이 출석한 첫 재판인 셈이다.


이날 법정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다. 두 사람은 지난 8월 말 1심 판결에서 각각 징역3년·집행유예 5년, 징역 2년6개월·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현재 불구속 상태다.

구속 상태인 피고인 중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최지성 삼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다. 오전 9시54분쯤 사복 양복차림에 한 달 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법정에 들어와 박 전 사장의 왼쪽 좌석에 앉았다.

자리에 앉기 전 박 전 사장과 목례를 나눈 뒤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어 9시58분쯤 장충기 삼성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최 전 부회장의 왼편에 무표정한 표정으로 앉았다. 다른 피고인들과 눈인사를 나눈 것 외에 별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지는 않았다. 장 사장 역시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재판 시작 직전인 10시쯤에 이 부회장이 감색 정장 차림으로 등장했다. 등장하자마자 최 전 부회장과 장 전 사장의 앞자리에 앉았으며 별다른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착석 후 변호인단으로부터 재판과 관련한 서류를 전달받은 뒤 권순익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와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이날 첫 공판은 지난달 28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예고한 것처럼 프레젠테이션(PT) 형식으로 진행됐다. 특검 측과 변호인단은 이날을 포함해 3차례 공판기일동안 항소이유에 담긴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PT를 진행한다. 진술→반박→재반박의 순서로 진행된다.

1심 송우철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에 이어 2심에서 변호의 키를 잡은 이인재 대표변호사는 모두진술에서 "특검 측이 이번 사건을 국정농단의 본체로 규정하는 것을 보고 (재판이) 형사재판 본연의 틀을 벗어나 비법률적 시각에 의해 재단되지 않을까 우려됐다"며 "원심판결을 보면서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인 엄격해석의 원칙이나 증거재판주의의 여러 원칙이 밀려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박주성 검사는 모두진술에서 "삼성 측의 미르·K재단 지원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1심 판단에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며 "원심이 (피고인 측에) 유리한 사유로 양형 판단한 부분도 본질을 외면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오전 공판에서는 박 전 사장의 특검 2회 진술조서의 증거능력(특검 측 제기)과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과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증거능력(변호인단 제기)이 다뤄졌다.

특히 1심 판결에서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간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의 합의 혐의를 뒷받침하는데 유력하게 쓰인 '안 수첩'을 두고 변호인단은 "대통령으로부터 그러한 독대 대화내용이 있었다고 전해 들은 내용을 기재한 것"이라며 "이는 전문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재 내용이 진실인양 여러 유죄사실이 원심에서 인정됐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수첩이 존재한다는 것'과 '수첩에 기재된 내용이 진실'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설명이다. 즉 안수첩이 기재내용이 진실임을 뒷받침하려면 적어도 원진술자인 박 전 대통령의 인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에 반해 특검 측은 "전문증거 법칙의 적용범위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라며 "적용범위가 어디인지를 따져서 증거능력을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맞섰다.

재판부가 사전에 주어진 시간을 당부한 만큼 오전 공판은 예정된 시간을 벗어나지 않고 약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 부회장은 PT를 주의 깊게 들으며 중간중간 물을 마시거나 안경을 쓸어올리는 것 외엔 별다른 미동을 보이지 않았다. 특검 측이 "삼성은 다른 대기업과 다르다"며 "2014년 9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첫 독대에서 이미 승계작업을 대가로 약속이 이뤄졌다"고 말한 대목에서는 진술자를 가만히 응시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행사에서 5분간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삼성 측이 맡아달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퇴정 시에는 변호인 등과 가벼운 눈인사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최 전 부회장이나 장 전 사장 등 전직 삼성 관계자들과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한편 이날 재판은 약 100명의 방청인원 수용이 가능한 중법정에서 진행됐다. 변호인들과 법조 출입 기자단을 제외하고 일반에 허락된 좌석수는 약 30석이다. 재판 시작 한 시간 전인 오전 9시에 이미 50여 명의 방청인원이 법원 밖에 긴 줄을 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