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의 스테레오마인드]10월은 잔인한 달

“어? 너도 자전거 타? 나 안 타는 거 있으니 가져가려면 가져가라.” 충동구매로 산 자전거를 탄지 10분 만에 넘어져서 창고에 처박아놨다는 지인의 선물로 자전거가 한 대 생겼다. 자, 이제 자전거 인생 시작이다.


헬멧과 장갑은 꼭 있어야한다는 주위의 조언에 헬멧과 장갑을 주문하고 한강에 나갔다. 세상에나! 우리나라에 이렇게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았었나? 그 전에는 무신경하게 보이던 풍경인데 자전거를 타고 나가보니 온통 자전거 타는 사람 투성이다. 첫날은 몸 푸는 기분으로 20 km만 타자.

딱 10 km를 타는 순간부터 엉덩이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15 km가 되니 상태가 심상치 않다. 20 km 즈음에서 집에 기어왔다. 주위에 물어보니 원래 그런 거란다. 한 열 번은 타야 덜 아프단다. 더구나 내가 타는 안장은 풀 카본이고 아무런 완충 장치가 없기 때문에 더 딱딱해서 더 아플 거란다. 어쨌든 열 번만 타면 된단다. 까짓것 열 번, 타지 뭐.

다음 날은 30 km다. 역시 집에 기어왔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다음 날도 집에 기어왔다. 그렇게 열 번을 채웠지만 엉덩이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열 번을 타면 안 아파진다는 사람들 암살단을 조직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에 자전거 쫄쫄이의 존재의 이유를 알았다. 왜 그렇게 민망한 쫄쫄이를 입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첫 번째로 엉덩이 부분에 패드가 덧대여있서 엉덩이의 통증이 훨씬 덜하고, 다른 이유로는 민망하고 창피해서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기 위해 페달을 빨리 밟아 속도가 올라간단다. 두 번째 이유는 믿거나 말거나.

당연히 쫄쫄이를 주문하고, 이왕 주문하는 김에 안장도 바꾸고, 페달도 바꾸고, 기타 부품들도 바꾸고, 고글도 주문하고 하니 이거야 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의 산 증인이 되었다. 그런데도 계속 용품들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건, 안장을 바꾸니 신세계가 펼쳐지고, 핸들 그립을 바꾸니 또 신세계가 펼쳐진다. 가방을 다니 배낭을 메지 않아도 되고, 구동계 부품들을 바꾸니 새로운 자전거가 되고, 브레이크를 바꾸니 또 신세계가 펼쳐진다. 이거야 원, 백화점을 차릴 것도 아닌데 매일 매일이 신세계라니.


어쨌든 그렇게 남들이 보기에는 자전거인으로 보일만큼 만든 다음에 무슨 객기인지 지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기로 하고 팔당 방면으로 출발했다.

전날 50km를 달리며 무리를 해서일까? 팔당역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엔진이 퍼졌다. 자동차야 엔진이 퍼지면 견인차라도 부를 수 있지만 자전거는 엔진이 퍼지면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지인을 먼저 보내고 자전거를 끌고 걸어오는데...

그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가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코스모스, 공원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산책을 나온 노부부, 그리고 저 멀리, 아주 멀리 보이는 서울 풍경. T. S.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아니다. 진짜 잔인한 달은 10월이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힘들어 죽겠는데 눈앞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니, 이거야말로 삶의 아이러니 아닐까?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도 아닌데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니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좀 천천히 가면 어떤가? 이렇게 좋은 가을과 꽃이 있는데.’ 그렇게 낮 12시에 시작한 라이딩은 밖이 어두워져서야 끝이 났고, 그 날 80 km를 달렸고, 이틀 동안 앓아누웠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다시 페달을 밟으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