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세계은행 흔들기…"中대출 조사 안 하면 자본확충도 안 돼"

지난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AFPBBNews=뉴스1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은행의 대중국 자금줄 단속에 나섰다. 미국은 세계은행이 중국에 대한 대출을 조사할 때까지 세계은행의 자본확충에 동참하지 않을 태세다.

세계은행은 이번 주 미국 워싱턴DC 연차총회에서 구체적인 시간표를 도출한다는 목표 아래 자본확충을 추진해왔다. 빈곤퇴치, 기후변화 대응, 난민문제 해결 등을 위한 역할을 확대하려면 자본을 늘려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주 189개 회원국 대다수가 지지하는 자본확충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 아래 세계은행의 자본확충 움직임에 저항해왔다. 급기야 최근에는 자본확충을 빌미로 세계은행에 중국에 내준 대출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은행이 중위소득 국가, 특히 최대 대출국인 중국에 대한 대출을 조사할 때까지 자본확충에 저항할 태세라고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의 한 관리는 최근 세계은행의 자본확충 논의가 시기상조라며 세계은행이 장부를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리는 세계은행의 대출 재원이 중국을 비롯해 돈을 빌려줄 능력이 있는 신흥국에 쓰이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은행이 중국 같은 나라를 지원 대상에서 졸업시키고 더 나은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세계은행의 최대 대출국이다. 지난 6월 말에 끝난 회계연도에 빌린 돈이 24억2000만 달러(약 2조7400억 원)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세계은행의 대항마 격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설립을 주도했다. AIIB의 자본금은 약 200억 달러로 세계은행의 160억 달러를 훌쩍 웃돈다.

미국은 세계은행의 의결권 지분이 가장 많다. 트럼프 행정부가 반대하면 세계은행의 자본확충은 물 건너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을 문제 삼아 세계은행의 자본확충에 제동을 건 것은 무역·북핵 문제 등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과 국제기구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반감을 동시에 드러낸 것으로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를 강조하며 세계은행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G20(주요 20개국) 등 국제사회의 협력을 주도해온 국제기구와 줄곧 갈등을 빚었다. 미국은 이날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국제기구에 등을 돌리는 미국의 고립주의가 세계 질서의 안정을 흔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싱크탱크인 글로벌개발센터(CGD)의 스콧 모리스 연구원은 세계은행이 그동안 중국을 대출로 붙잡아두며 AIIB를 비롯한 경쟁 기구의 영향을 상쇄하려 노력해왔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노골적으로 중국에 싸움을 걸면서 분열이 더 심해지게 됐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