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총사퇴' 박근혜, 국선변호인 지정해도 재판 표류?

박근혜 전 대통령 / 사진=홍봉진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65)의 변호인단이 전원사퇴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재판부가 직권으로 국선 변호인을 지정할 것이 유력시된다.

그러나 국선 변호인이 선임되더라도 박 전 대통령의 협조가 없는 한 충실한 재판 진행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추가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내년 4월16일까지 재판을 표류시켜 1심 선고 전 석방을 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법원 직권으로 국선변호사 지정 가능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이날 예정됐던 재판을 취소하고 19일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 선임 및 향후 재판절차에 대해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르면 구속 상태의 피고인에게 변호인이 없는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 변호인을 지정할 수 있다. 전날 유영하 변호사 등 박 전 대통령을 변호해 온 7명의 변호인이 모두 사임계를 제출한 것이 박 전 대통령 본인의 의사였음에 비춰볼 때 별도의 사선 변호사 선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은 징역 3년 이상의 혐의가 적용된 '필요적 변호 사건'이기 때문에 변호사 없이 재판을 받을 수는 없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이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기 않을 경우 재판부는 직권으로 국선 변호인을 지정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에는 국선 전담 변호사 약 30명과 중앙지법 관할 지역의 소속 변호사 중 국선 변호인으로 활동하는 일반 국선 변호사 등 약 408명의 변호사들이 등록돼 있다. 대개 재판부는 국선 전담 변호사를 우선적으로 지정한다. 국선 전담 변호사가 법원이 지정한 사건의 수임을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일반 국선 변호사의 경우 이런 저런 사정을 대며 수임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중앙지법에 등록되지 않았더라도 재판부가 바깥에서 국선 변호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국선 변호사를 지정하는 것 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다는 얘기다.


◇朴, 국선변호사 허수아비로 만들수도


법조계 안팎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국선 변호인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재판을 표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이 '변호인단 총사퇴'를 결정한 것은 변호인단과의 신뢰관계가 깨져서가 아니라 재판부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재판부가 지정한 국선 변호인을 박 전 대통령이 거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재판부가 지정한 국선 변호인에 대해 피고인이 거부의견을 제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어디까지나 재판부가 결정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법정에서의 싸움을 대리하는 게 변호사 본연의 역할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 본인이 거부한 국선 변호사를 교체하지 않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설령 재판부가 새로 지정한 국선 변호사를 박 전 대통령이 수용하더라도 재판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박 전 대통령 사건과 관련한 수사·재판기록도 10만 페이지가 넘는다. 민사재판과 달리 형사재판의 기록은 변호사가 일일이 복사해야 한다. 국선 변호인이 기록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모두 검토하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박 전 대통령이 국선 변호인의 접견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2차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내년 4월16일까지 재판을 지연시킬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내년 4월16일까지 1심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재차 구속영장 추가발부에 나설 명분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법원과 검찰은 불구속 상태에서 1심 재판을 마무리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했다.

◇朴, 재판 불출석 가능성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불출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재판부는 강제 구인장 발부 등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을 법정으로 억지로 끌어낼 수 있지만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자신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부각시키려는 박 전 대통령의 전략에 부응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불출석하더라도 재판 진행이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형사소송법은 "구속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다고 인정될 때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궐석재판'이다. 그러나 재판부가 궐석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할 경우 박 전 대통령 측이 재판에서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총사퇴' 카드가 본인의 재판을 법리 싸움이 아닌 정치 투쟁으로 끌고 가기 위한 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국선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재판이 진행되더라도 박 전 대통령은 "실질적인 변호를 받지 못했다"거나 "정치적 논리로 재판이 진행된다"는 등의 논리로 재판의 정당성을 훼손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