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투성이 정부 '재건축 가이드라인' 봤더니…

/그래픽=최헌정 디자이너

약 15년째 방치되고 있는 국토교통부의 재건축(재개발 포함) 표준정관이 관련 법과 상당 부분 맞지 않을 뿐더러 조항끼리 모순되거나 비리에 빌미를 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준정관은 재건축 사업의 가이드라인 격이다.

23일 국토부의 재개발 표준정관과 도시정비법을 비교 분석한 결과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다수 확인됐다. 재건축, 재개발 표준정관 중 사업장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재개발 표준정관을 기준으로 살펴봤다.


우선 현행 도시정비법과 각종 조건 규정이 달랐다. 조합정관 변경조건의 경우 표준정관에서는 '조합원 3분의 1 이상 등의 발의'가 필요하지만 도시정비법에서는 '조합원 5분의 1 이상 등의 발의'를 요구한다.

조합 임원 선출방법은 표준정관에서는 '총회 출석 조합원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도시정비법에서는 그런 조항이 없다. 조합임원 임기는 표준정관에는 '2년, 연임 가능'으로, 도시정비법에는 '3년 이하, 연임 가능'으로 각각 적혔다.

조합임원 해임 조건도 다르다. 표준정관에는 '직무유기·태만·관계법령 등 위반으로 조합에 부당한 손실을 초래한 경우'로 전제조건이 붙어 있지만 도시정비법에는 '조합원 10분의 1 이상 발의'만 있으면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비리 혐의가 있는 조합 임원이 표준정관을 내세우며 "부당한 손실을 초래한 근거를 대라"고 버티는 사례가 수두룩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관리처분계획 중 분양공고 시한의 경우 표준정관은 '사업시행인가 고시 후 21일 이내'로 정해놨지만 도시정비법은 '60일 이내'다. 분양 미신청자에 대한 현금청산 시한도 표준정관(150일 이내)과 도시정비법(90일 이내)이 다르다.

업계 관계자들은 표준정관 내에서도 모순되는 조항들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먼저 제10조제1항에 따르면 조합원은 임원으로 선출될 권리가 있고 제2항에 따르면 조합원의 권한은 평등하다. 그러나 제15조제2항을 보면 조합임원은 조합설립인가일 현재 1년 이상 거주한 조합원 중에서 선임된다. 앞에서는 '모든 조합원은 평등하게 임원이 될 수 있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1년 이상 거주한 조합원만 임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비리에 빌미를 준다는 비판도 나온다. 제36조제3항은 '통신·전기·급수·도시가스 등에 대해선 시설물 관리권자와 협의해 철거기간이나 방법 등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철거업자들이 모호한 조항을 악용해 한 번에 건축물을 철거하면 될 일을 철거, 전기 철거, 가스 철거, 수도관 철거 등으로 중복 계약하고 이 과정에서 검은돈이 오간다는 건 업계의 상식처럼 돼버렸다.

표준정관에서 대의원의 임기를 제한하지 않은 점도 비리를 부른다. 최근 건설업자들이 조합 임원뿐만 아니라 대의원들한테도 로비를 하는데 조합은 표준정관에 따라 대의원의 임기를 종신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대의원들이 그만큼 비리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지난해 말 경찰은 면목3주택 재건축 사업장을 집중 수사해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대의원 30여 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보다 못한 지방자치단체가 표준정관을 고쳐 배포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서울 서대문구는 내부용으로 '서대문구 주택재개발정비사업 표준정관'을 만들어 놓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