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고객은 은행 취업도 특혜?…흙수저는 한숨만

높은 연봉과 고용 안정성으로 ‘꿈의 직장’으로 손꼽히는 금융권이 채용비리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시장의 파수꾼인 금융감독원이 채용비리 의혹으로 감사원 지적을 받은데 이어 시중은행도 이른바 VIP의 채용 청탁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취업준비생들의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석 노트북에 붙은 '문재인 정부 무능심판' 피켓을 놓고 여야간 설전 속 정회 여부에 대한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국정감사는 이 피켓을 떼는 문제를 갖고 여야간 합의가 되지 않자 10분간 정회가 선언됐다. 2017.10.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7일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이 지난해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금감원과 국가정보원 등 사회 고위층 인사의 자녀와 거액 거래를 하는 기관고객의 자녀 16명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심 의원이 공개한 우리은행 내부 문건에는 △합격자 16명의 이름·생년·성별·출신학교 등 개인정보 △지원자 배경 정보를 담은 관련 정보 △각 합격자에 대한 추천인(은행 전·현직 간부) 등이 담겨 있다.


관련 정보에는 ‘금감원 요청’, ‘금감원 이모 부원장보 요청’, ‘국정원 백모씨 자녀’, ‘국군재정단 연금카드 담당자’, ‘모 대학교 대외부총장 요청’ 등 주요 기관과 전임 은행 임원 등 배경이 기재돼 있다. 또 ‘모 부구청장 자녀’, ‘모 중앙병원 이사장 요청’. ‘모 CFO(최고재무책임자) 자녀’ 등은 합격자 비고란에 ‘여신 ○○○○억원’, ‘신규 여신 ○○○억원 추진’, ‘RAR(위험조정수익) ○억’이라는 정보가 적혔다. 해당 VIP 고객들이 은행에 제공하는 수익을 나타낸 것으로 거래실적과 채용의 관련성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은행은 이 문건을 인사팀이 작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VIP 고객과 거래 관계를 감안해 채용 부탁을 곧바로 거절하지 못하고 인사부에 알렸을 뿐 합격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전국 영업망을 갖춘 우리은행 간부들이 직·간접적으로 추천을 받은 인물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백명 규모이지만 공개된 16명은 합격이 결정된 후 추천 명단에 있던 사람들을 추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청탁이 당락에 영향을 줬는지 여부인데 신입직원 채용은 100% 블라인드 방식이기 때문에 결코 추천이 당락의 변수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은 지원자의 출신 지역과 학교 등을 모른 채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만 보고 채용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해명에도 파장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이 블라인드 채용 확대와 청년층 일자리 정책에 공을 들여온 만큼 앞으로 금융권 채용관 관련해 금감원 검사가 강도 높게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금감원 채용비리 의혹에서 모 금융회사 회장과 국책금융기관 임원이 연루된데 이어 우리은행의 이른바 ‘금수저’ 특혜 채용 의혹까지 연달아 불거진 만큼 금융권 전반의 채용 과정에 대한 여론의 불신이 커진 영향이다.

채용비리 의혹은 다른 시중은행으로도 확산될 수도 있다. 최흥식 금감원장은 이날 국감에서 “다른 시중은행들도 이런 일이 없을지 합리적 의심을 해볼만 하다”는 심 의원의 지적에 “은행권의 채용 과정을 검토하고 비리가 발견되면 검찰에도 수사 의뢰를 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다른 은행들도 모두 전국에 영업망을 갖추고 고객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탓에 채용 시즌마다 각계 VIP들의 청탁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VIP 친인척들이 은행 채용에 지원할 때 유·무형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워낙 채용 과정 전반이 투명해져 누군가의 청탁이 당락에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면서도 “당락에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최종 확인되더라도 은행이 VIP 추천 명단을 별도로 관리하는 것 자체가 채용 과정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