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 직접 가보니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로 들어가는 입구(여의도환승센터 2번 출구에 위치)/사진=이미호기자

IFC서울(서울국제금융센터)과 콘래드 서울 호텔 등 초고층 건물을 뒤에 두고 있는 여의도환승센터 2번출구. 'SeMA(서울시립미술관의 약자) 벙커'라고 써 있는 지하계단을 통해 걸어내려가니 263평(871㎡) 남짓한 공간이 나왔다.

지난 2005년 서울시가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건립공사 도중 발견한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다. 비밀이라는 명칭이 붙는 이유는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소관부처와 자료 등 관련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서울시가 항공사진을 찾아본 결과, 1976년 11월엔 공사 흔적이 없었지만 이듬해 11월 사진엔 벙커 출입구가 보여 이 시기에 공사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19일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김준기 안전총괄본부장은 "특히 벙커 위치가 1977년 국군의 날 사열식 때 단상이 있던 곳과 일치해 당시 대통령 경호용 비밀시설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개관 기획 전시인 '역사갤러리 특별전'이 열리는 공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공간 한측 벽면에는 또 다른 방과 연결되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VIP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사진=이미호기자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VIP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80평 규모의 방이 나왔다. 서울시는 원형 보존 차원에서 화장실과 변기, 샤워장은 그대로 두고, 소파는 원형과 비슷하게 만들어 시민들이 직접 앉아볼 수 있게 했다. 작은 타일 형태의 바닥은 그대로 뒀고, 천장이 낮아 노출형태로 바꿨다.

또 공간확보를 위해 내벽을 덧대고 소방, 냉·난방 시설과 환기설도 갖췄다.


당초 서울시는 2005년 발견 당시, 버스환승객 편의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수익성 부족으로 폐쇄했다. 이후 10년만인 2015년 3월, 집중호우로 내부공간이 침수되면서 현장조사가 이뤄졌고 디자인, 문화, 건축분야 전문가들이 활용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7월부터 9월까지 석면철거 등 보수·보강공사에 들어갔고, 10월에 언론에 첫 공개했다.

서울시는 유휴 지하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를 살려, 2015년 10~11월 시민 2039명이 직접 체험하도록 하고 활용방안에 관한 시민의견을 수렴했다. 이후 설계 및 공사를 거쳐 개관하게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벙커를 둘러보고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지 않냐. 발견 그 당시 소파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면서 "이 곳을 시민들이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는 앞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한다. 오는 11월 26일까지 개관 기획 전시전 '역사갤러리 특별전' '여의도 모더니티'를 개최하는 등 수준높은 전시나 기획을 통해 시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화요일에서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매주 월요일과 1월1일은 휴관)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당시 VIP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면기와 좌변기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사진=서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