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떠나도 구원투수 없다?…자금소진한 국민연금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는 증시에서 국민연금이 수급상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이 최대 한계치를 넘어선 탓에 연말을 앞두고 일부 주식을 매도하는 리밸런싱(자산 재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중장기 자산배분 전략을 마련하고 매년 국내외 주식·채권·대체투자 등 투자자산별로 목표 투자 비중을 설정한 뒤 운용하고 있다. 예컨대 증시가 급락하면 보유 주식의 평가가치 하락에 따른 투자 비중 감소분 만큼 매수해 간극을 메운다. 자연스럽게 주식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와 반대로 올해는 이례적인 주가 상승으로 당초 예상했던 주식 투자 비중을 초과하면서 일정 부분을 덜어내듯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의 올해 기금운용계획상 연말 목표치를 보면 국내 주식을 116조3120억원(전체 기금자산의 19.2%)으로 잡았다. 하지만 올 들어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평가액이 불어나 7월 말 기준 9조9058억원 초과한 126조2178억원으로 집계됐다. 단순 계산하면 10조원에 육박하는 국내 주식을 정리해야 한다.

해당 금액이 모두 매물로 쏟아질 가능성은 낮다. 들쑥날쑥한 시황을 감안해 자산배분 비중을 ±2.5%포인트(16.7%~21.7%) 범위 안에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추석 연휴 이후 코스피가 또다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비중은 허용 범위마저 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선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추가 매수 여력이 소진된 상황인데다 앞으로 적지 않은 차익실현성 매물마저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최근 코스피 랠리를 외국인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이 같은 움직임은 수급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외국인은 올 들어서만 국내 주식을 7조원 가까이 매수했고 이달에만 국내 주식을 1조6000억원 이상 순매수하며 최근 두 달 여간 횡보하던 증시를 상승세로 이끌고 있다.

미국이 연내 금리인상을 기정 사실화해 외국인이 시장을 떠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기금은 코스피 하락기에 대규모 매수에 나서 주가가 급락하는 것을 막는 하방 경직성을 강화시켰는데 외국인이 매물을 쏟아낼 경우 이를 받아낼 여력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실제로 올 들어 지난 2월을 제외하고 8월 말까지 매달 하락했던 달러인덱스(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평균 가치)는 지난달과 이달 들어 반등세를 나타냈다.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과 행정부의 세제개편 기대감이 달러를 밀어 올리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신흥국 투자에 대한 환차익 매력이 줄어든다. 이에 국내 증시에서도 외국인 매수세가 꺾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류용석 KB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달러는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단기적으로 1분기 정도 달러가 반등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외국인 매수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북한 도발로 인한 지정학적 위험이 불거질 때마다 외국인들은 매도 공세를 폈고 이때마다 국내 주식을 매수하며 하방을 지지한 것이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국민연금은 과거부터 증시가 무너질 때마다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며 "기금운용계획상 주식비중 문제가 국민연금의 매매동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