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인 있어야 재판하는데…" 박근혜 재판부 '골머리'

박근혜 전 대통령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되면 전 사임할거에요. 사건기록만 10만쪽이 넘는다는데 지금와서 박 전 대통령 국선 변호를 맡겠다는 변호사가 있을까요?"


서초동의 한 국선 변호사의 말이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전원 사임하면서 재판부가 국선변호인 선임을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건 기록만 10만쪽을 훌쩍 넘는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맡겠다는 국선변호사들을 찾기 힘들어서다. 국선 변호사들 역시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맡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서울중앙지법 소속 국선전담 변호사들 가운데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맡을 국선 변호인을 물색 중이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국선전담 변호사 약 30명과 중앙지법 관할 지역의 소속 변호사 중 국선 변호인으로 활동하는 일반 국선 변호사 등 약 400여명의 변호사들이 등록돼 있다. 대개 국선 변호인이 필요한 사건에는 국선전담 변호사가 우선 지정된다.

그러나 업무 부담이 큰데다 정치적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뜻 나서는 변호사를 찾기 어려워 재판부가 고심에 빠졌다. 재판부가 국선전담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박 전 대통령 사건 수임에 대한 자원을 받은 결과, 단 한명만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록의 양이 방대하고 복잡한 사건의 특성상 두명 이상의 국선 변호인이 필요하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지난 16일 법원이 추가구속영장 발부를 결정하자 이에 반발, 전원 사임했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이 구속 상태거나 형량이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의 사건일 경우 '필요적 변호' 사건에 해당해 변호인이 있어야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필요적 변호'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변호인이 없이는 재판을 열 수 없다.

변호인이 없는 피고인에게 법원은 직권으로 소속 국선 변호사에게 사건을 배정할 수 있다. 배정받은 변호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정된 사건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국선 변호사가 수임을 원하지 않을 경우엔 변호인에서 사임하는 게 가능하다. 재판부 입장에서도 국선 변호인 지명에 앞서 해당 변호사의 동의가 필요한 이유다.

형사소송규칙 제20조는 △질병이나 장기여행으로 직무 수행이 곤란할 때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폭행·협박·모욕을 당해 신뢰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때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게 부정한 행위를 종용받았을 때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 국선변호인에서 사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일반적으론 아무리 힘든 사건이라도 재판부가 지정하는 사건은 국선 변호사들이 대부분 받아들이지만 박 전 대통령 사건은 다를 수 있다"며 "재판부가 직권으로 지정한다고 국선 변호인이 무조건 사건을 맡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국선전담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물리적으로도 사안이 복잡하기도 하지만, 사건을 맡아도 전 변호인단 등 외부의 간섭이나 개입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라며 "누구도 선뜻 맡겠다고 나서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국선전담 변호사 역시 "(재판부가) 변호사들에게 개별적으로 의사를 물어오고 있는데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서울중앙지법이 국선전담 변호사가 아닌 일반 국선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길 수도 있다. 일반 국선 변호사가 국선 사건을 맡을 경우 40만원의 기본 보수가 주어진다. 그러나 재판부 재량에 따라 5배 범위 내에서 증액이 가능해 최대 2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국선 변호사 중에도 자원자를 찾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일반 국선 변호사는 "국선 변호사들 사이에서 과연 누가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맡을 것인지 관심이 많다"면서도 "본인이 맡고 싶다는 변호사는 아직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