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통합검색

실시간 속보

경제신춘문예 (~12.08)
세상과 잘 사는법, 내가 잘 사는법 - 네이버 법률

[광화문]전화 한 통

광화문 머니투데이 김익태 사회부장 |입력 : 2017.11.07 05:00
폰트크기
기사공유
약관의 조선 청년 김창수의 인생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것은 한 통의 전화였다. 1895년 8월 20일 새벽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을 급습해 명성황후를 처참하게 살해했다. 며칠 후 청년은 황해도 치하포 객주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이때 단발의 한복을 입은 한 남자가 들어섰다. “혹시 우리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가 아닐까?” 청년은 조선인처럼 변장하고 칼을 감추고 있는 그를 이상히 여겼다.

“당신 대체 왜 칼을 숨기고 조선사람으로 위장한 것이오!” 청년의 말에 남자는 칼을 빼 들었다. 격투가 벌어졌고, 일본군 장교 쓰치다는 살해됐다. 청년은 인천 감옥에 투옥됐고, 3개월 후인 1896년 8월 26일 사형 집행이 예정됐다.

사형을 목전에 둔 그 날 저녁 인천 감옥에 한 통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몇몇 죄수들의 사형 집행을 재가했던 고종은 조선 국모 시해범으로 생각한 일본인을 살해한 죄로 한 청년이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보고받았다. 즉시 어전 회의를 열었고, 3일 전 궁중과 인천 간 개통된 전화로 인천 감리를 불러 “당장 조선 청년의 사형 집행을 멈추라”고 명했다. 경성 밖 장거리 전화가 설치된 것은 인천이 처음이었다. 그 전화가 없었다면 바로 사형이 집행됐다. 이날 목숨을 구한 청년이 바로 후일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백범 김구다.

2013년 5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웰스파고 챔피언십’에서 무명의 반란을 일으킨 데릭 언스트(23)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눈을 다쳐 오른쪽 시력이 거의 없었다. 세계랭킹 1207위에 대기순번 4순위로 출전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2부 투어 ‘웹투어 닷컴’ 대회 참석차 뉴올리언스에서 렌터카를 타고 조지아로 가고 있었다.

그 때 “출전 선수 몇 명이 기권했는데 대회에 나올 수 있겠느냐”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인생역전이 시작됐다. 대회장인 노스캐롤라이나로 목적지를 틀었다. 어렵게 출전해 로리 매킬로이 등 쟁쟁한 스타들을 제치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전화 한 통으로 운명을 바꾼 이들의 얘기가 미담처럼 전해진다.

한 통의 전화로 취업이 결정됐다는 공공기관·은행 등의 채용비리는 정반대의 경우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청년들의 희망은 깨졌고, 자식 잘 봐달라 전화 한 통 넣을 곳 없는 부모들의 참담함과 박탈감은 깊어졌다. 빽 없고 돈 없는 이들의 슬픔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근저에는 ‘나만 잘살 수만 있다면 그깟 정의가 대수냐’는 특권층의 비뚤어진 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영화 <대부> 속 돈 콜레오네는 특유의 말투로 상대방에게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라고 말한다. 마피아의 무력으로 상대방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을 제안하며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는다.

우리 사회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은 무력의 협박을 통해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나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인데, 내가 보낸 사람 좀 취업시켜줘”란 사칭 전화에 대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이 속아 넘어간 ‘웃픈’ 얘기도 있지 않았나. 이뿐인가. 학연·지연·혈연과 얽혀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운 ‘전화 한 통’의 문화가 사회 구석구석 퍼져 있다. 결국 그들 만의 리그가 만들어지고, 부패는 이곳에서 싹튼다.

실력이 아닌 돈과 빽 에 의해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들의 좌절감이 커질수록 사회적 갈등요인은 확대된다. 빽이 능력이고 실력이 되는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수많은 장밋빛 일자리 대책을 내놓으면 뭐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거다. 그게 절실하다.
[광화문]전화 한 통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