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왜 KB 노동이사제에 찬성표를 던지나

전북 전주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 사옥 전경 /사진제공=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이 KB금융지주의 ‘노동이사제’에 찬성한 것을 두고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반영한 셈이다. 이를 계기로 주요 기업의 지분을 다수 보유한 국민연금이 노동이사제를 민간으로 확대하는데 앞장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의사결정 과정이 국정과제에 반영된 국민연금의 투명성과 충돌하고 있어 논란이 불가피하다.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KB금융 노동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주주총회 안건에 찬성키로 결정한 건 지난 14일 투자위원회에서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지난 7일 취임한 뒤 첫 투자위원회였다. 김 이사장은 국정과제를 총괄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전문위원 단장 출신이다.

국민연금의 결정에 앞서 KB금융 노조는 참여연대 출신의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 멤버로서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의 형태다. 이는 국민연금이 노동이사제에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을 보면, 국민연금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의결권을 기금운용본부에 설치한 투자위원회에서 정한다. KB금융의 노동이사제 도입 찬성은 이 위원회에서 처리됐다. 반면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찬반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맡긴다. 이날 KB금융의 또 다른 주총 안건이었던 회장의 계열사 인사권 배제건은 전문위원회를 거쳤다.


결국 KB금융의 주총 안건은 ‘투 트랙’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국민연금은 전문위원회 결과를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외부에 공개했지만, 투자위원회의 결정은 아직까지 외부에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감춘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노동이사제와 관련해 외부에 언급할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도 엇갈린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기금투자운용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외압에 시달렸다고 비판한 문재인 정부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정작 김 이사장이 부임한 뒤 첫 투자위원회의 의사결정은 ‘투명성’과 배치된다.

게다가 이번에 국민연금이 노동이사제 도입을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한 만큼 앞으로도 유사한 일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이사제 도입과 관련해선 ‘찬반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약 270여개에 이르는데, 국민연금의 이같은 의사결정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게 된다.

한편 정부는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를 빠르면 내년부터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과정에서 노동이사의 규모와 역할, 업무범위 등을 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