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덮친 포항…냉기 도는 주택매매시장

“지진났을 때 아파트 탑층에서 아기 업고 1층까지 걸어내려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어요.”
　
“새로 지은 아파트도 벽이 쩍쩍 갈라지는 판국에 십수 년도 더 된 아파트는 오죽하겠어요.”
　
지진 여파로 경북 포항 주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지역 주택시장에 냉기가 돌고 있다. 그동안 포항 주택시장은 지역 주력산업인 자동차·조선산업의 위축으로 하향곡선을 그렸다. 최근엔 경기가 조금씩 개선되고 대형 건설사들의 신규 분양이 잇따르면서 서서히 살아나는 분위기였지만 예고없이 지진이 찾아왔다.
　
시장에선 이번 지진으로 주택구입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미분양 해소도 지연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만 안전상의 이유로 노후주택을 처분하고 새 아파트로 갈아타려는 수요로 청약시장이 곧 회복되리란 낙관론도 나온다.
　
22일 부동산시장에 따르면 지난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포항 주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주택시장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노후주택과 빌라의 벽에 금이 가고 담벼락이 무너지는가 하면 지은 지 3년밖에 안된 아파트단지도 안전이 위협받을 정도로 지진 피해가 컸다. 아파트 동 건물 자체가 3도가량 기울어져 철거가 불가피해 거주민 전체가 임시거처로 이사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이에 주택 매수 문의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추가 지진에 대한 걱정으로 아예 주택 매입을 포기하는 수요자도 적잖다.
　
특히 이번 지진의 진원지인 북구 흥해읍에서 가깝고 대규모 개발로 신흥주거지로 부상하던 북구지역에 피해가 집중됐다. 주택시장 회복의 불씨를 꺼트릴 위험이 높아졌다. 포항 북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집값이 약세를 보이던 남구와 달리 북구 양덕동, 장성동 일대는 새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집값이 상대적으로 선전하던 곳이었는데 이번 지진의 영향을 받을 것같다”며 “지진이 난 후 집값이 한동안 떨어졌던 경주 사례만 보더라도 당분간 주택시장이 고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진 피해가구를 중심으로 늘어난 이주수요는 포항 남구나 대구, 울산 등 인근 지역으로 옮아갈 것으로 관측된다. 지진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한 포항 남구지역에는 전세문의가 늘었고 차로 30~40분이면 접근 가능한 인근 지역에 거처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포항지역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상대적으로 안전해보이는 새 아파트 저층으로 이사 가려고 알아보고 있다”거나 “아파트 매입 대신 주상복합 저층 전세로 마음을 바꿨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포항에 거주 중인 A씨는 “요즘 아파트엔 내진설계가 돼 있다고는 하지만 부실시공 없이 안전하게 지어졌는지 신뢰하기 어렵고 고층일수록 지진에 더 흔들리는 것도 무섭다”며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각보다 더 심한 것같다”고 토로했다.
　
연내 포항에서 분양에 나설 예정이었던 대형 건설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대부분 신규분양 단지가 지진 피해 인접지인 북구에 위치해 실수요자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은 데다 추가 지진 발생 시 공사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도 높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들어 포항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1~10월 누적 기준 남구는 1.5%, 북구는 2.4% 하락했다. 이번 지진으로 주택거래가 위축되면 집값이 더 하락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지진에 따른 주택시장 영향이 아주 오래갈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면서도 “부동산 규제에 지진까지 겹치면서 내년 주택시장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