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미로시장에서 보낸 한나절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미로예술시장 골목. 각종 점포가 들어서 있고 벽에는 눈길을 끄는 장식물들이 걸려있다./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이름이 왜 미로시장이에요?”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길 잃기 딱 좋거든요. 가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원주에 갔던 날 마중 나온 지인과 함께 걸어가면서 나눈 대화다. 어디 가고 싶으냐고 묻길래 시장에 가보자고 했더니 추천한 곳이 미로시장이었다. 정식 명칭은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 원주 사람들이 대개 중앙시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미로시장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뭐 특별할 거야 있으려고’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장 구경을 워낙 좋아하는 까닭에 ‘시장’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설렜다. 하지만 미로시장에서만큼은 내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1층 시장을 둘러볼 때까지만 해도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먹거리 골목, 주단 골목, 수선 골목 등이 눈에 띄었지만, 다른 전통시장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미로예술시장에 있는 가죽공방/사진=이호준 여행작가.

2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풍경은 순식간에 바뀌고 말았다. 여기가 시장 맞아? 시장이되 시장 같지 않은 시장이었다. 작고 예쁘게 꾸민 점포들이 각자의 특색을 자랑하면서 나란히 서 있었다. 점포는 이름만 쓴다고 해도 한참 적어나가야 할 정도로 많았다. 특히 ‘윤서맘의 천연공방’ ‘공방 쁘디캔들’ ‘미로공방’ ‘반지공작소’… 등 공방이 많았다. 유리창 너머로 가죽제품, 캔들, 컵, 도자기,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들이 눈길을 끌어당겼다. 공방에서는 제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었다. 그 옆으로는 천연화장품 가게, 옷가게, 보석가게 등이 자리 잡았다.

세련된 카페가 있는가 하면 옛날식 찻집도 공존하고 있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할 정도로 높은 책장에 책들이 꽂혀 있는 북카페에는 젊은이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아득한 시절 만화방처럼 정다운 풍경이었다.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곳, 타로점을 보는 집도 있었고 ‘희망연구소’ ‘상상잡화점’ ‘무용담 예술상점’ ‘구멍가게’ 같은 눈길을 끄는 간판도 줄을 이었다. 젊은이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간판과 발랄한 컬러로 표현돼 있었다. ‘노인 문화싸롱’이란 간판에는 ‘소외된 노인 없는 행복한 세상 만들기’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점포마다 각각 취향에 맞게 꾸몄지만 건물은 옛날에 지은 것 그대로이기 때문에 천장은 골조가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어울렸다. 부조화의 조화랄까?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참신한… 표현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벽에 그려진 벽화와 전시된 작품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2층 미로예술시장에서 바라본 1층 중앙시장/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원주 중앙시장은 1950년대부터 장이 서기 시작한 전통 깊은 시장이라고 한다. 1965년에는 중앙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개설되었고 1970년에는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을 준공했다. 1992년 화재가 났지만, IMF로 재건축이 무산된 데다 대형마트 등이 등장하면서 침체기를 겪었다. 더구나 시청 이전 이후 ‘시내’ 자체의 활기가 떨어지면서 2층은 빈 점포가 많았다. 그런 와중에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에 따라 2013년에는 ‘예술로 연주하는 중앙시장’ 레지던시 사업이 진행되었다. 2015년에는 중소기업청의 문화관광형 시장, 2016년에는 중소기업청 청년몰 조상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청년들이 찾아와 속속 점포를 열고 새로운 도약을 이끌었다.

매달 둘째 주말에는 미로시장 프리마켓이 열리고 골목미술관 등이 조성돼서 쇼핑과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또 시장 중앙의 중앙광장에서는 시민들과 함께 하는 각종 공연과 이벤트가 진행된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 보니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예쁜 디자인의 상품들과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이 하나 같이 발길을 잡아당기기 때문이었다. 어느 골목에서 출입문을 예쁘게 칠하고 있던 젊은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새로 점포를 개설한 모양이었다.

“페인트칠을 직접 하세요?”
“그럼요. 저 벽도 다 칠했는걸요. 사실은 이웃들이 다 도와줘요. 모두가 함께 꾸며나가는 거지요.”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내 마음도 절로 가벼워졌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미로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별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들어간 길은 어느새 사라지고 아주 생경한 곳에서 출구를 찾고 있었다. 숨바꼭질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웠다. 그날 한 나절, 나는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에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