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통상압박에 소송 카드 꺼낸 철강·화학, "이겨도 고민"

사진=AP/뉴시스

철강, 화학업계가 '소송'을 미국 통상 압박에 대한 최후 카드로 꺼내 들었다. 하지만, 판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승소할 경우에도 실제 미국 정부가 무역 장벽을 낮추도록 할 강제성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강도 반덤핑 관세 부과 위기에 직면한 전자·태양광 업계도 정부와 공조로 소송까지 가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금호석유 (123,000원 ▼100 -0.08%)화학은 지난달 미국 정부가 한국산 합성고무에 부과한 반덤핑 관세가 부당하다며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 소송을 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8월 금호석유화학에 44.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예비판정을 최종 확정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당초 미국 수출규모가 미미해 반덤핑 관세가 사업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예상보다 높은 관세가 부과되자 소송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 통상압박에 대한 국내 수출업계의 소송 대응은 철강을 넘어 화학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포스코 (391,500원 ▼3,500 -0.89%)는 지난해 미국이 열연·냉연강판에 부과한 60%대 반덤핑·상계관세에 대해 CIT에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올해도 탄소합금 후판에 부과된 반덤핑·상계관세 11.7%가 적절치 않다며 소송을 냈다.

현대제철 (31,550원 ▼500 -1.56%)과 넥스틸도 지난 4월 유정용 강관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최종 판정에서 예비 판정보다 대폭 오른 관세를 부과받자 CIT를 통한 소송에 들어간 상태다.

미국 통상압박에 대한 최종 카드인 소송은 창구별로 세계무역기구(WTO)와 CIT를 통한 제소로 나뉜다. WTO 창구는 소송의 주체가 기업이 아닌 정부이며 CIT는 기업이 직접 소송을 건다는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미국 상무부의 결정에 영향을 주려 하는 소송이라는 점에서 같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WTO 소송은 미국 밖에서 진행되는 정부 대 정부 소송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소송 기간이 2년 이상으로 길다"며 "CIT 소송은 미국에서 진행이 되지만, 소송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고 말했다. 기업과 정부가 전략적으로 소송 창구를 선택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이 승소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이 2014년 현대제철 등의 유정용 강관에 부과한 9.9~15.8% 반덤핑 관세 조치다. WTO는 이 같은 조치가 WTO 협정 위반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달 공개했다.

하지만, 승소하더라도 미국이 실제 관세 조치 시정에 나서는 것은 다른 문제다. WTO 결정은 권고사항일 뿐 이를 미국 상무부에 강제할 권한이 WTO에는 없다. CIT는 강제성이 있지만, 승소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업계와 정부 공조로 소송까지 가는 상황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며 "소송에 투입되는 시간과 별도로 비용까지 고려하면 소송은 모든 방법이 막힌 상태에서 택하게 되는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