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주 트라우마' KDB생명 증자 발목

KDB생명 로고/출처=머니투데이DB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KDB생명이 대주주 증자를 놓고 우리사주 매입이라는 새로운 고비를 맞았다. KDB생명 임직원은 과거 두 차례 감자를 겪으며 우리사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큰 반면 대주주인 KDB산업은행 측은 고통분담 차원의 우리사주 매입을 증자의 선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12일 "KDB생명은 RBC(보험금 지급여력) 비율을 맞추지 못하면 무너질 수 있는 데다 향후 정상화시켜 다시 매각 절차를 밟기 위해서라도 증자가 필요하다"며 "다만 (대주주 증자와 함께)KDB생명도 스스로 증자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KDB생명이 자사의 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사주 매입이 유일하다. 실제로 KDB생명 노사는 현재 우리사주 매입 안건을 놓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임직원 직급별(1~4급)로 최소 100만원에서 2000만원 이상의 우리사주 매입이 추진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통해 약 50억~60억원대의 자금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노조 측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영업력과 사기가 저하된 상태에서 우리사주 매입까지 요구받는 것은 과도한 '고통분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KDB생명은 최근 대주주 증자를 염두에 두고 66.7% 비율의 무상감자를 실시한 바 있다. 앞서 KDB생명에 인수되기 직전인 2010년 금호생명 시절에도 3분의 1 수준의 감자가 진행돼 우리사주를 매입했던 직원들이 큰 손해를 봤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애사심을 가지고 대출받아 우리사주를 매입했는데 이익은 커녕 두 차례나 감자되는 모습을 본 임직원들이 또다시 우리사주를 사고 싶겠느냐"며 "특히 최근 희망퇴직 등 일련의 구조조정을 겪으며 직원들의 사기 저하와 심리적인 동요가 큰 상태라 우리사주까지 매입하라고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KDB생명은 9월 기준 RBC비율이 116.2%까지 떨어질 정도로 재무건정성이 악화되자 대주주 증자를 위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희망퇴직을 통해 임직원 908명 중 235명이 회사를 떠났고 190여개에 달하던 지점은 99개로 줄었다. 올해 초 15명에 달하던 임원도 줄줄이 퇴임해 현재 5명만 남은 상태다.

반면 산은 측은 증자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으려면 강도 높은 자구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당장 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재무건전성에 급한 불을 끈다고 하더라도 2021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을 앞두고 자본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라 어려움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KDB생명 관계자는 "자구안에는 당장 필요한 자본 외에 2021년까지 3년 간 체계적인 자본조달 계획 및 상품구조 개편안 등이 담겼다"며 "회사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대주주 증자 못지 않게 임직원의 일치단결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우리사주 매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우리사주 매입을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며 "회사가 정상화됐을 경우 우리사주에 대해서는 성과급 등의 방식으로 투자한 금액의 몇 배 이상의 혜택을 주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KDB생명의 영업 기반이 오랜 기간 훼손되는 과정에 대주주인 산은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KDB생명은 지난 2010년 산은 계열로 편입된 뒤 산은 출신 인사들이 경영을 맡아 왔지만 체질 개선에 실패, 매각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