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가상통화 계좌 폐쇄… 고객 돈 어쩌나

/ 임종철 머니투데이 디자이너.

은행들이 가상통화(암호화폐) 거래를 위해 필수적인 자금이체 가상계좌 발급을 중지하고 기존 가상계좌는 폐쇄하기로 하면서 가상통화 거래소들이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일부 가상통화 거래소들은 자체 법인계좌를 통해 회원 자금이 입·출금되는 시스템을 갖춰 일단 거래에는 문제가 없는 반면 준비가 안된 거래소들은 부랴부랴 시스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다만 은행 가상계좌가 폐쇄되면 가상통화 매매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해킹 등 보안에 취약해 고객들의 불편과 위험이 커질 것이란 지적이다.


신한은행은 13일 빗썸, 코빗, 이야랩스 등 가상통화 거래소 3곳에 대해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규모 거래소인 빗썸의 경우 그동안 신한은행을 통해서만 1회용 가상계좌를 발급해왔다. 이에 대해 빗썸측은 "가상계좌 발급이 중단된다고 해서 거래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고객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뭔지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신한은행이 추가적인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함에 따라 빗썸은 현재 NH농협은행을 통해 신규 고객을 받고 있다.

그동안 가상통화 거래소들은 회원 신청이 들어오면 시중은행의 가상계좌를 발급해 입금할 창구를 열어줬다. 회원은 이 가상계좌에 입금한 돈을 거래소에 예치하고 가상통화를 거래해왔다. 실시간 입·출금이 가능해 편리하고 은행을 통하다 보니 보안에도 안전했다. 은행들은 가상계좌를 발급해준 후 매월 초 전달 수수료를 정산받았다.

하지만 정부가 가상통화 거래를 규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 KDB산업·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KB국민·신한·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신규 가상계좌 발급 중단에 나섰다. 기업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기존에 발급한 가상계좌도 유예기간을 두고 폐쇄한다는 입장이다. KEB하나은행은 아예 가상통화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현재 NH농협은행만 가상통화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발급해 주고 있다.


코인원 관계자는 "농협은행과 실명인증을 통해 본인 계좌에서만 입·출금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며 "정부의 가상통화 규제안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농협은행이 가상계좌를 발급해주고 있어 당분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자체 법인계좌를 통해 고객 돈을 입·출금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가상통화 거래소도 있다. 회원이 거래소 자체 계좌에 입금하면 거래를 위한 전자지갑을 터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실시간 입·출금이 안 되고 해킹 등에 노출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저축은행에서도 가상계좌 개설이 가능하지만 별도의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 만큼 아직 저축은행과 제휴한 가상통화 거래소는 없다.

내년 초 개설을 준비하는 한 가상통화 거래소 관계자는 "이미 은행과 가상계좌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발해 놨는데 차질이 빚어졌다"며 "앞으로 정부 규제안이 어떻게 나오는지는 따라 시스템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가상통화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이 가상계좌를 터주지 않는다면 고객 돈이 그대로 해킹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가상통화 거래소의 법인계좌를 이용한 거래에 믿음을 갖지 못하는 고객들이 거래를 끊거나 보안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가상통화 및 블록체인 기술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전문가는 "고객 보호를 위해 고객자산 별도 예치나 자금세탁 방지 등을 의무화해야지 가상계좌 발급 중지는 오히려 고객 돈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과 같다"며 "미국에서 비트코인 선물 상품이 공식 출시되는 상황에서 한국만 글로벌 흐름에서 뒤쳐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