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색 구역'에 주차한 車…아저씨가 내렸다

/삽화=김현정 디자이너

#지난 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지하주차장. 핑크색으로 표시된 '여성전용주차구역'에 차 한 대가 들어왔다. 후면주차를 마친 차량에서는 남성 운전자 A씨(40)가 내렸다. "여성만 세울 수 있는 주차장에 왜 차를 세웠느냐"고 묻자 그는 "자리가 있으면 세우는 거지 뭘 그렇게 따지냐"고 쏘아붙이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여성들이 주차를 할 수 있게 한 '여성전용주차구역'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남성들이 대다수 주차하지만 별다른 제재 방안이 없고 "왜 여성들만 배려하느냐"는 역차별 논란도 여전하다. 여성전용주차구역에서 범죄가 발생한 뒤 여성 운전자들의 불안감도 커진 상황이다.

15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여성전용주차구역은 2009년 서울시가 '주차장 설치 및 관리 조례'를 통과시키면서 본격화됐다. 주차 공간이 30대 이상인 곳은 여성전용주차구역을 10% 이상 설치하도록 의무화 했다. 주차장에서 여성들을 노리는 범죄가 많아지자 이를 방지하고 편의를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이를 기반으로 전국의 공영주차장과 백화점·마트 등에는 핑크색 주차선이 그려진 여성전용주차구역이 속속 생겼다.

통상 여성전용주차구역에는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 운전자가 주차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남성 운전자의 경우 유아를 동반했을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도입된 지 10년이 다 돼도록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 9~11일 머니투데이가 마포구·양천구·강서구 등 서울시내 여성전용주차구역이 있는 주차장 6곳을 살펴본 결과 이 곳에 주차한 운전자 70명 중 남성 운전자가 53명(76%)으로 더 많았다.


이들 대다수는 여성전용주차구역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직장인 최준석씨(48)는 "여성들만 차를 세우라고 있는 공간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별로 신경쓰지 않고 주차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신모씨(35)는 "여성과 동승했는데 그럼 주차해도 되는 것 아니냐"며 따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제재 방안이 없다. 여성전용주차구역이 장애인주차구역과 달리 주차장법에 관련 조항이 없기 때문에 남성들이 주차해도 벌금이나 과태료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남성 운전자들은 여성전용주차구역이 '역차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직장인 황승구씨(34)는 "여성 휴게실, 주차장, 지하철 등 전용 공간이 많이 생기는데 역차별"이라며 "남성들도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여성 운전자들도 불만을 토로했다. 주부 김미희씨(36)는 "남성들이 주차를 못하도록 강력히 제재할 것이 아니면 아예 없앴으면 좋겠다"며 "이도저도 아닌데 괜히 여성들만 욕을 먹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특히 여성전용주차구역에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직장인 이다혜씨(29)는 "여성전용주차구역이면 최소한 비상벨을 만들던지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주차선만 핑크색이고 나머진 다 일반 주차장과 똑같다"고 꼬집었다.

실제 지난 2015년에는 한 대형마트 여성전용주차구역에서 한 남성이 여성을 납치·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해 불안감을 키우기도 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상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게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홍보를 위주로 했었다"며 "지금으로서는 어려운 부분이 있고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관련법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