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가 필요없는 친환경 수세미로 일본 홈쇼핑 진출에 성공한 70대 사장님의 선행

“처음엔 ‘못 하겠다’ 했어요. 그래도 ‘견뎌보라’ 하더군요. 전화 받기처럼 단순한 일도 제겐 벅찼거든요. ”


입사 6년 차인 심영순씨는 첫 회사 생활을 그렇게 시작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뇌병변 장애를 입은 그는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가누지 못해 장거리 외출은 엄두도 못냈다. 심 씨는 이제 버스도 타고 작은 차도 장만해 자가운전으로 출퇴근한다. 그에게 일할 용기를 북돋워 준 곳은 친환경 일회용 항균 수세미를 생산하는 경산의 사회적기업 코어피앤씨이다.

코어피앤씨는 항균 휴지 생산 업력이 20년이 넘는 전문 기업이다./사진=이우기

◇ 장애인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사장님

경산의 지체 장애인 수는 6000명이다. 이 가운데 취업자수는 극히 소수다. 이욱현 경산시지부 지체장애인지원센터장은 “회원 850명 가운데 취업에 성공하는 분들은 연간 1%도 채 안 되는 실정이다”고 밝혔다.

장애인고용진흥공단이 2016년 조사한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산이 위치한 경북지역의 장애인 고용률은 31.3% 이다. 이는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 최하위인 광주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이다.

코어피앤씨는 경북지체장애인협회 경산시지회와 MOU를 맺고 5년 동안 일감을 제공해주기로 했다./사진=이우기

이 센터장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자격증이 있어도 전문 직종을 얻기 힘들다”며 “특히 경산지역은 50인 이상의 규모를 갖춘 장애인 의무 고용 대상 기업이 적어 취업이 더 힘든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코어피앤씨는 단비와 같은 존재다. 경산시 지체장애인 협회는 지난 2015년부터 코어피앤씨로부터 매년 1500만 원 상당의 일거리를 제공받았다. 올해 7월에는 본격적으로 코어피앤씨와 MOU를 맺고 앞으로 5년 동안 일감을 제공받기로 협약을 맺었다.

코어피앤씨는 협회 공간이 부족해 장애인들이 작업에 어려움을 겪자 선뜻 공장의 사무실 한 곳을 작업장으로 내주었다. 이 같은 선의에 협회는 작업장 문턱 없애기와 장애인전용 화장실 공사비용 부담으로 화답했다. 서로가 조금씩 힘을 보태니 훌륭한 작업 모델이 완성된 거다. 코어피앤씨에는 지난 9월부터 5명의 장애인근로자가 상시 근무하고 있다.

◇ 세제가 필요없는 친환경 항균 수세미 개발.. 내년 일본 홈쇼핑 진출

장애인 일감 대부분은 일회용 수세미를 포장하는 일이다. 코어피앤씨는 한 유명기업에 20여년 동안 항균휴지를 납품해 온 실력을 바탕으로 올해 친환경 항균 수세미 ‘이지워시 세이프’를 개발했고 지난 11월 특허도 따냈다.

물에 묻는 순간 수세미는 거품을 낸다. 수세미 표면에는 친환경세제가 묻어있다./사진=이우기

이지워시세이프는 남다르다. 먼저 세제가 필요 없다. 겉보기엔 일반 수세미와 똑같지만 물에 적시면 거품이 퐁퐁 일어난다. 세제는 친환경세제이고 소재는 아이들 젖병에 쓰는 플라스틱이어서 다 쓰고 나면 재활용통에 넣어주면 된다. 버려진 수세미 원단은 다시 수세미를 만들거나 다른 용도로 재활용할 수 있다.

편리함과 깨끗함 그리고 일회용이지만 재활용 될 수 있다는 친환경 이미지 덕분에 이지워시세이프는 날개 돋힌 듯 팔렸다. 사회적기업을 위한 홈쇼핑 기부 방송에서 불과 30분 만에 2400세트가 팔려 단박에 7000여 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수세미 제조기법에서 특허를 받은 '이지워시 세이프/사진=이우기

이 방송을 본 일본 홈쇼핑업계에서도 판매하고 싶다는 경쟁이 불붙어 내년부터 이지워시세이프는 일본시장에 본격 진출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수세미 덕분에 올해 연 매출 목표를 35억 원으로 올려 잡고 달성하면 고용률도 20% 늘린다는 계획이다.

◇ 협업으로 경쟁력 높이기

이지워시세이프에는 착한 기업과의 상생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어있다. 물만 적시면 하얗게 거품을 뿜어내는 세제는 친환경세제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다래월드’ 제품이다.

“다래월드가 저처럼 여성 기업인이고 친환경 세제를 만들 뿐 아니라 좋은 일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기왕이면 제품도 좋고 착한 일 하는 기업과 협업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30여년 사업에 잔뼈가 굵은 김영순 코어피앤씨 대표는 작은 기업들이 성장하려면 협업(콜라보레이션)이 생명임을 강조했다.

“대기업은 인력도 우수하고 장비를 갖출 자금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 같은 영세기업들은 그 모든 게 비용입니다. 내가 가진 것과 상대방이 갖고 있는 장점을 살려 새로운 걸 만들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바로 경쟁력이라고 봅니다.”

김영순 대표(왼쪽)가 직원과 함께 공정을 살피고 있다. 이 회사는 정년이 없다./사진=이우기

◇ 정년을 없애다.

올해 70살인 김 대표는 최근 정년을 없앴다.

“제가 일해 보니 70살도 건강만 허락한다면 충분히 일할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정년이요? 우리 회사엔 그런 것 없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건강과 능력만 갖췄다면 이곳에선 모두가 일꾼이다. 퇴역한 군인, 신용불량자, 장애인, 고령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 직원 15명 가운데 ⅓인 5명이 고령자이다.

김 대표의 나눔 정신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1998년 IMF 광풍이 몰아쳤을 때 탄탄하던 사업이 기울어 그 역시 한때 신용불량자가 됐다. 포기하고 자책과 회한의 세월을 보낼 때 회생절차를 밟으라고 용기를 북돋워 준건 다름아닌 이웃과 지인들 이었다.

코어피앤씨 직원들. 퇴역군인·신용불량자·장애인·고령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사진제공=코어피앤씨

그 때의 고마움과 아픔을 기억하며 신용불량자 5명에게 일할 기회를 줬고 이 중 3명이 자립에 성공해 퇴사했다. 남은 2명도 2년 후면 신용불량자 신분을 벗어 날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한때 신용불량자였다 해서 일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말이 안 되잖아요.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벗어나야죠. 누구나 건강만 허락하면 일할 기회를 주고 싶어요. 최고의 복지란 바로 일자리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