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비트코인 솜방망이 규제…증시 활성화 발목 잡아"

증권업계가 정부의 가상화폐 대책이 규제 수위가 예상보다 낮아 증시 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증권시장으로 유입돼야 할 자금이 가상화폐 쪽으로 더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내놓은 가상화폐 대책은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대책의 골자는 △미성년자·외국인 계좌 개설 및 거래 금지 △암호화폐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 △매출액 100억 이상 거래소 인증 의무화 등이다.


반면 전면 거래금지와 같은 강력한 규제책은 빠졌다. 증권업계는 이 같은 수준의 규제로는 가상화폐가 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에서만 11월 한 달 간 56조2944억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다. 빗썸의 가상화폐 거래 시장점유율(70% 수준)을 고려하면 지난달 80조원 가량이 가상화폐 거래에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코스닥시장의 올해 월평균 거래대금인 68조7096억원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가상화폐 거래가 급증한 올해 5월과 8월을 살펴보면 코스닥시장에서 거래가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 빗썸의 4월 거래금액은 6434억원에서 5월 5조2679억원으로 늘어난 반면 코스닥 거래대금은 69조3674억원에서 55조2119억원으로 줄었다. 8월에도 빗썸 거래금액이 전달 대비 13조원 증가한 반면 코스닥 거래대금은 2조원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상화폐 시장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른 지난달 말부터는 코스닥시장이 주춤하고 있다. 지난달 코스닥 거래금액은 142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지만 코스닥 지수가 30일 1.32% 하락한데 이어 이번 달 4일부터 8일까지 5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이 시기에 비트코인 가격은 폭등했고 8일에는 사상 최고액인 2499만원을 달성했다.

코넥스·K-OTC(장외주식시장)를 활성화하려는 정부 정책이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 역시 가상화폐 시장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코넥스 시가총액은 지난 10월 4조2000억원에서 대책 발표 후인 11월 말 4조5000억원으로 3000억원 상승하는데 그쳤다. K-OTC 시장은 양도세가 폐지되는 등 호재가 있었는데도 시가총액이 14조원대를 맴돌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한재영 K-OTC 부장은 "정부가 각종 혜택을 주며 두 시장의 활성화를 지원하는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데는 가상화폐 열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업계는 이번 대책으로 사실상 가상화폐가 합법화돼 거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렇게 되면 시중자금이 가상화폐 시장으로 몰리고 상대적으로 코스닥 등은 침체에 빠질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개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증권사 직원들까지도 주식보다 가상화폐에 열중하는 상황"이라며 "거품이 꺼지기 전까지는 가상화폐에 쏠린 관심이 증시로 돌아올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블록체인 기술이 사용된 가상화폐를 전면 불법화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인정받는데, 이를 전면 금지했다가는 금융 혁신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블록체인은 핀테크 등 각종 분야에서 혁명을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이라며 "전면 금지보다는 상황에 따른 조치가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