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후보군 관리서 회장 빠지면…"줄대기·내분 우려"

금융감독원이 금융지주사 CEO(회장) 후보군 관리에서 현직 회장의 배제를 주문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장 본인도 후보군에 포함될 수 있어 이해상충 방지 및 공정성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는 취지지만 현실화될 경우 회장의 그룹 내 지배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또 차기 회장 후보군의 사외이사 ‘줄대기’가 심해지고 자칫 경영진 ‘내분’ 사태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 14일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에 대한 경영유의사항 공시를 통해 상시 지배구조위원회와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차기 회장 후보자군 선정·관리하는 만큼 현직 회장을 위원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경영유의사항은 제재는 아니지만 금융회사에 주의 또는 자율적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적 성격의 조치다.

현재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 등 3개 금융지주사는 모두 내부 규정을 통해 ‘상시적인 회장 후보군 관리 및 평가·검증’을 이사회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사회 내 소위원회로 지배구조위나 회추위를 두고 지주사 경영진과 주력 계열사 대표이사 등이 포함된 예비 CEO 후보군을 매년 선임·평가하는 등 관리한다. 여기에는 현직 회장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최근 금융지주사 회장 ‘셀프 연임’ 논란에 비판 수위를 높여온 데다 경영유의사항까지 나온 만큼 금융지주사들은 내부 규정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KB금융은 지배구조위가 계열사 CEO를 선출하는 ‘상시’와 회장을 뽑는 ‘확대’로 이원화해 운영중인 만큼 이를 분리하고, 확대 지배구조위에 차기 후보군 관리 역할을 맡기는 동시에 현직 회장 참여를 제한할 전망이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이미 계열사 인사를 위한 소위원회가 따로 있는 만큼 회장 선출과 후보자 관리를 담당하는 지배구조위와 회추위를 사외이사만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꿀 예정이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회장 후보군을 관리하는 소위원회에서 회장을 배제하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하다. 가장 큰 우려는 후보군인 지주사 임원 또는 계열사 대표이사에 대한 현직 회장의 지배력이 약화될 가능성이다. 한 금융사 사외이사는 “연임을 위해 현직 회장이 그룹 내 임원들과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회장이 임원들을 경계하게 되고 경영진 내부 신뢰가 깨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현직 회장과 후보군 임원이 동시에 회장 자리를 노린다면, 저마다 사외이사 줄대기 경쟁을 할 수 있다”며 KB금융지주 어윤대 전 회장과 임영록 전 회장의 갈등을 사례로 제시했다. 어 전 회장은 당시 지주사 사장이었던 임 전 회장을 경쟁자로 여겨 임기 내내 견제하며 연임을 노렸지만, 임 전 회장이 사외이사들의 신임을 얻은 덕분에 차기 회장에 선출됐다.

이 관계자는 “당시 KB금융 회장 선임 과정은 사외이사의 마음을 얻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게 드러난 사례”라며 “사외이사들이 더욱 권력화되고, 그룹 경영진에 대한 현직 회장의 영(令)이 꺾여 경영진간 반목을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후보군 관리를 사외이사에게만 맡기면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보군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회장이기 때문이다. 한 금융지주사 고위관계자는 “회장이 후보군 내 포함될 그룹 경영진들의 업무 능력과 품성 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데, 회장을 배제하면 후보군에 대한 평가·관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회장이 후보군을 모르면 후계자 양성프로그램도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회장이 자신을 대신할 인물을 모르면 자신의 업무를 알려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CEO 승계과정을 만드는 건 결국 유고를 대비한 것”이라며 “회장과 후계자가 업무를 공유하지 않고서는 유고 때 위험이 커질 수 있고 승계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