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글로벌키워드10]⑥인플레이션

실업률은 낮아지는데 물가는 별로 오르지 않는 ‘저물가 미스터리’는 올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을 골치 아프게 한 난제다. 물가상승률을 정책 목표로 두고 있는 중앙은행들은 이전에 볼 수 없던 낯선 추이에 곤혹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

올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선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이 개선됐다. 그런데 물가상승률은 오르지 않거나 심지어 떨어졌다. 취업자가 늘고 실업률이 떨어지면 임금과 물가가 올라야 하지만 올해엔 이 ‘상식’이 들어맞지 않은 것이다.


‘미스터리’는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졌다. 미국의 실업률은 1월 4.8%에서 11월 4.1%까지 하락, 2000년 12월 3.9%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경제성장률도 1분기 1.2%에서 2분기 3.1%, 3분기 3.3%로 상승했다.

그러나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한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하락했다. 하반기 반등했지만 최근 2.2%(11월)로 여전히 연초(2.5%)보다 낮다. 실업률이 하락하는 동안 미국의 시간당 임금 인상률도 정체됐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뾰족한 설명이 아직은 없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지난 9월 공개석상에서 이를 “미스터리”라고 지칭했다. 11월 뉴욕대 강연에선 여기에 대한 ‘당혹감’을 부연했다.


옐런은 당시 “2014~2016년의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를 하회한 건 쉽게 설명할 수 있지만 올해는 놀라웠다”고 말했다. 옐런에 따르면 2016년까지의 저물가는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노동시장의 유휴노동력을 만들어 낸 높은 실업률, 유가 하락, 달러의 급격한 절상 등을 통해서다.

그러나 올해는 실업률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떨어졌고, 유가와 달러 가치는 안정적이었다. FRB는 올해 물가하락이 의료비용 상승률 둔화와 통신요금 하락 등 일시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집요한 저물가를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대다수의 생각이다.

저물가의 원인 중 공통으로 꼽히는 요인은 정체된 임금상승률이다. 노동시장 세계화, 기술발전에 따른 전 세계적인 유휴노동력, 노동조합 약화로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저하된 점 등이 임금 인상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다만 이 같은 추이를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구조적 변화에 따른 영구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이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어떤 관점이 통설로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통화정책 등 경제정책에서의 처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저물가가 장기화되는 동안 원인을 ‘합의’하지 못한 세계 중앙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자산 가격이 오르고 실업률이 떨어지는 상황을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후 편 대규모 통화 부양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부양책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확대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어서다.

그러면서 세계 경제가 기존의 모델로 설명될 수 없는, 이전과 다른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가설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11월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 FOMC 위원들은 물가상승률이 현재 예상보다 오랫동안 2%를 하회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옐런 역시 “낮은 물가상승률이 일시적이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