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원유' 데이터 확보戰

‘구글이 죽음을 해결할 수 있을까’(Can Google Solve Death?)


지난 2013년 미국 타임(Time)지에 실렸던 기사 제목이다. 당시만 해도 ICT(정보통신기술) 기업과 인류의 생사가 어떤 관계가 있길래 이런 제목이 붙은 것일까 의아해 하는 이가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이런 부분에 의문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이미 구글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IT뿐 아니라 의료, 교육, 환경,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된 지 오래다. 비단 구글만의 얘기가 아니다. 애플, 페이스북, 바이두, 알리바바 등 글로벌 공룡들의 활동 반경도 무한 팽창 중이다. 그 중심에는 데이터가 자리한다. 이들의 AI 기술력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알고리즘에 적용할 데이터의 절대량이다. 구글은 하루 평균 약 35억건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10엑사바이트(100억 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들은 당장 사람들의 말귀를 더 잘 알아듣는 AI스피커를 만들고 집보다 편안한 자율주행차를 만들어내는 밑천이 된다. 데이터 확보 경쟁에 목숨 거는 이유다.

◇스피커에서 광고까지…데이터가 흔든다=지난해 구글의 ‘빅 브라더’ 위용이 만천하에 드러난 일이 있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사용자의 위치 정보(교신 기지국 정보)를 자국 데이터센터로 빼돌리고 있던 사실이 드러난 것. 기지국 정보는 스마트폰에서 위치정보 알림을 활성화하지 않아도 수집된다. 기지국 정보를 통하면 사람들의 동선과 현재 위치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구글은 논란이 불거지자 “품질 개선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업계는 구글이 데이터 수집에 무리수를 두다 드러난 일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 사용자의 위치정보는 구글의 현재는 물론 미래의 수익원이나 다름없다.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들의 동선 데이터를 모으면 큰 맥락의 교통 및 인구 밀집 정보가 된다. 이는 자율주행차는 물론 모바일 광고에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불었던 AI 스피커 열풍은 데이터 확보전의 대표적 사례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인터넷 기업들이 잇따라 시장에 가세했다. 최재홍 강릉원주대 교수는 “AI 스피커는 아직 초기 단계의 제품이지만 콘텐츠 이동을 이끌고 사물인터넷(IoT) 환경의 매개체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용자들에게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스피커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원은 실생활에서 얻는 데이터”라고 말했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클라우드 시장 경쟁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은 방대한 빅데이터를 통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나아가 클라우드 서비스를 전담하는 법인인 아마존웹서비스(AWS)를 통해 클라우드 사업을 전면화하고 있다. AWS는 전 세계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에서 수년째 1위 자리를 지키며 클라우드에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은 AWS에 대항해 클라우드 시장을 잡기 위해 혈안인 상태다.


자연스럽게 기업들은 사업 밑천이 될 데이터를 보관하는 데이터센터 구축에 더욱 열을 올릴 것이란 관측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아마존, 구글, MS가 데이터 수집과 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들인 비용만 36조원에 달한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 기업들도 세계 각지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권영일 한국정보화진흥원(NIA) K-ICT빅데이터센터장은 “산업경제 생산의 3요소가 토지, 노동, 자본이었다면 데이터 기반경제에서는 인터넷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데이터 자본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며 “글로벌 기업들의 원유 확보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확체증 법칙’ 빅데이터 시장…승자독식 경쟁 구도 본격화=데이터 자본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적인 자본과 달리 소비량에 따른 감소분이 없다는 점이다. 이용할수록 오히려 가치가 높아진다. 돈이 거래 당사자들 간 한정된 가치를 지니는 차원에 그쳤다면 데이터는 개방을 통해 무한의 가치를 가져다준다. 데이터를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더 많이 확보할수록 가치창출 가능성이 커진다. 때문에 기업들의 데이터 확보 경쟁이 앞으로 한층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부연구위원은 “빅데이터 시장은 투입하는 생산요소가 늘어날수록 얻을 수 있는 생산량이 투입량의 몇 배로 증가하는 현상인 수확체증의 법칙이 통용되는 산업”이라며 “시장선점을 통해 데이터를 보다 쉽게 확보하려는 경쟁이 심화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구글, 아마존, 삼성전자 등 전통적인 IT 기업이 아닌 제조, 금융, 유통 등 비 ICT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분석 툴을 개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기준 통신, 금융, 제조 등의 업종에서 92개의 빅데이터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들을 연계하는 시스템은 전무한 상황. 사회, 경제적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는 주요 데이터를 수집, 생산하는 기관 간 연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말 통신, 금융, 제조 등 주요 빅데이터 활용 산업 분야를 대표하는 21개 기업·기관이 참여해 4차 산업의 필수자원인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활용 생태계 조성을 위한 상호협력을 약속했다.

이종석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장은 “고객정보와 같은 데이터로 돈을 버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등이 여전한데 이런 부분을 포함한 전반적인 국민적 논의의 장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