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5주년에 2억 기부한 부부…"받은 도움 갚아야죠"

한상원 동아에스텍 회장(오른쪽)과 박일선 동아세라믹 대표(왼쪽) 부부는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각각 1억 원 기부를 약정하고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사진제공=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을 시작한 지 오래됐습니다만 더 많이 해야죠. 주위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잖아요. 도와줘야죠. 그런 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고요. 앞으로도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조상들은 배고픈 새들을 위해 감나무의 감을 모두 따지 않고 두어개 남겨뒀다. 이를 까치밥이라고 한다. 한상원 동아에스텍㈜ 회장(63·사진)의 기부 철학도 선조들의 까치밥 정신과 맥이 닿아 있다. 그에게 기부란 나눔과 배려, 공존과 상생을 의미한다.

한 회장은 회사가 자리 잡은 2000년부터 기부를 시작해 올해로 19년째 이어오고 있다. 유니세프, 월드비전,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법사랑위원회, 홀트아동복지회, 북한 결핵환자 치료사업단체인 유진벨 재단 등 복지단체 15곳을 통해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 회장은 지난해 6월 부인 박일선 동아세라믹㈜ 대표와 함께 각각 1억원씩 기부를 약정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광주에서는 7번째 부부 회원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2016 행복나눔인상'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구멍가게에서 업계 1위로…"지역민 도움에 보답해야"=연매출 2200억원, 도로안전시설물 국내시장 1위로 자리 잡은 동아에스텍의 모태는 6평 남짓의 구멍가게였다. 지금은 대형 교량에 들어가는 울타리, 도로 가드레일 등 도로안전시설물을 생산하지만 처음엔 진열대 앵글이나 철재 울타리를 조립해 팔았다.

전남 해남에서 나고 자란 한 회장은 어린 시절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다. 29살 나이에 창업을 결심한 것도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탓이었다. 부모님은 처음 사업에 도전하는 아들을 위해 집에서 키우던 소를 팔아 자본금을 마련해줬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1983년 광주 금남로에 자리를 잡고 동아산업을 개업했다. 처음에는 앵글 조립, 가드레일 시공업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회사를 키우려면 철재를 직접 생산해야겠다고 판단한 한 회장은 1996년 동아기공(동아에스텍 전신)을 설립, 자체 기술을 개발해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대개의 창업 과정이 그렇듯 동아산업이 동아에스텍이 되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부실채권이 생기고 연대 보증을 서기도 했다. 한 회장은 "처음에는 다들 힘들게 시작한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온다. 다행히 내게는 감당할만한 시련이 왔으니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성공의 공을 '운'과 '이웃'에게 돌린다. 그는 "부모님과 지역민들의 지원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기부를 할 때 특히 지역사회 지원 활동에 앞장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관내 사회복지시설과 자매결연을 체결하는가 하면 지역인재장학기금, 땅끝지역아동센터, 도내 고려인 4세 돕기, 지역 체육회 기금 등에 지난 10년 동안 5억원 가까이 기부했다.

한상원 회장. /사진제공=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국민이 사랑하는 장수기업 향해…"기업 잘 돼야 나눔도"=한 회장은 기업의 공적 기능을 강조한다. 그는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은 직원을 많이 고용해 여러 사람을 먹여 살리고 구성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이 본사를 수도권이 아닌 지역 내 소규모 공단에 그대로 두는 것도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그는 "정보 획득, 자금조달, 수주 기회, 고급인력 충원 등 모든 환경에서 수도권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본사를 수도권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외부의 유혹도 많았다. 그래도 내 고향의 고용 창출과 지방 세수 등 지역경제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옮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생명을 존중하는, 고객이 감동하는, 국민이 사랑하는, 보람을 공유하는 기업'이라는 기업 이념에서도 한 회장의 이러한 철학이 드러난다. 그는 "구성원들이 먼저 회사를 신뢰하고 행복하면 고객도 기업을 믿고 신뢰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 국민이 사랑하는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에스텍을 장수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사업적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한 회장은 "기업이 잘돼야 나눔도 하고 배려도 하는 것 아니겠나. 장수기업이 돼서 이웃과 더불어 나누면서 존경할만한 기업이 됐으면 한다"고 100년 기업을 향한 의지를 보였다.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는 게 한 회장의 신념이다. 그는 "기업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필수다. 능력이 부족한 2세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행태는 기업의 공개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경영인 은퇴 후엔 '인재 양성'…"기부는 힘 닿는 데까지"=한 회장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 3가지'를 이루는 게 은퇴 전 목표다. 그가 생각하는 값진 일 3가지는 아픈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 일자리를 만들어 여러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일,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인재를 기르는 일이다. 그는 "첫 번째는 기술과 지식이 없어 못하지만 나머지 2가지는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꼭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삶의 '값진 일'을 이루기 위해 한 회장은 경영인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인재 양성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그는 "이제는 큰 공장이나 산업 설비가 없어도 훌륭한 인재만 있으면 얼마든지 엄청난 부와 재산을 창출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학교를 설립하거나 인수해서 한국을 이끌어갈 미래 인재를 기르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한 사람들, 경제적 뒷받침이 안돼 병을 못 고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이웃에게 나누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고 싶다. 능력이 되고 힘이 될 때까지 나눔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