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만 키운 벤처 20년…칸막이 걷어야 '유니콘' 자란다

#미국의 10대 유니콘 기업의 고용창출 효과는 2015년 기준 2만명 이상으로 분석된다. 공유차량 서비스 기업 우버의 직원 수는 7500명이지만 미국 내 36만여명의 우버 택시기사가 있는 것처럼 간접고용창출 효과가 큰 기업도 상당하다. 공유숙박 서비스업체 에어비앤비도 3000명의 직원보다 1000배 많은 300만개 이상 숙소가 등록돼 있다. 최근 30년간 미국은 기존 기업들이 일자리를 매년 100만개 줄였지만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3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면서 고용불안을 최소화했다.


◇20년간 57조원 벤처시장 투입…유니콘은 2개뿐=‘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한 1997년 이래로 한국은 벤처기업 육성에 20년을 공들였지만 좀처럼 유니콘 기업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유니콘 기업은 10억달러(1조2000억원 수준) 이상의 가치를 지닌 비상장 기업으로 혁신성장의 상징으로 여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그동안 벤처기업 육성 등을 목적으로 투입한 중소벤처기업 정책자금 예산만 57조7000억원이다. 특히 최근엔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연간 4조5000억원 이상 정책자금이 연이어 투입됐다.

지속적인 지원은 외형적 성장을 가져왔다. 벤처확인제도가 도입된 1997년 벤처기업은 2042개사에 불과했지만 2002~2003년 글로벌 벤처거품 붕괴에 따른 조정기간을 거친 이후 2010년 2만개, 2015년 3만개로 덩치를 키웠다. 지난해 12월 기준 벤처기업은 3만4814개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세계가 주목하는 유니콘 기업 배출은 미진하다.

그나마 유니콘 기업으로 손꼽히는 쿠팡과 옐로모바일도 안정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는 평가다. 2015년 당시 5조50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소프트뱅크와 블랙록 등으로부터 1조5000억원 이상 자금을 유치한 쿠팡은 최근 3년간 영업적자로 투자금 상당액을 소진한 상태다. 옐로모바일 역시 스타트업과의 주식스와프(교환) 방식으로 자금 없이 회사 규모만 키운 형태여서 불안한 성장을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벤처기업의 급속한 성장은 국가 경제정책을 뒤흔들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예컨대 우버의 경우 국가별 시장진출 여부가 ‘뜨거운 감자’다. 진출 국가의 택시기사단체로부터 강한 저항을 받았다. 에어비앤비 역시 진출국가마다 임대제한법 등으로 홍역을 앓았다.

◇칸막이 규제에 막힌 벤처 성장판=한국의 경우 촘촘한 규제로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례로 O2O(온·오프 연계) 서비스와 함께 가장 많은 유니콘 기업이 배출되는 금융분야는 핀테크 진입장벽이 높아 성장기회를 놓쳤다는 평가가 많다.

구글 캠퍼스서울과 아산나눔재단이 발간한 ‘스타트업코리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금융법 체계가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은 등록할 수 없거나 성격이 전혀 다른 기존 업종 중 하나로 분류되는 사례가 많다”며 핀테크 혁신과 성장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은 초기 공모를 통한 투자중개업으로 분류했다가 투자자 보호를 명목으로 자기자본 30억원 이상 보유와 피투자건마다 30가지 이상 관련서류를 제출해야 했다는 점을 대표적인 이유로 꼽았다. 그러면서 “규제완화 개정안도 발의 2년 후에야 통과되는 등 사업모델이 시장에 안착할 기회는 물론 스타트업의 초기 필요자금 지원기회까지 놓쳤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막혀있는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회를 넓히고 학연 창업 확대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M&A(인수·합병)가 벤처투자회수의 86%를 차지하지만 우리의 경우 3%에 그친다.

박용호 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은 “우리 벤처기업은 엑시트 기회가 적고 M&A에 부정적인 문화가 있다”고 진단하면서 “고급기술 기반 창업을 위해 대학과 기업연구소의 창업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정권 교체주기인) 5년마다 리셋되는 정책으로는 벤처기업의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다”며 “창업자의 실패 트라우마를 제거하기 위해 기업가정신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