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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임종석·조국, '1987' 그 때 그 사람들

[the300]文, 노무현과 부산 국본 주도…'임길동'과 '박종철의 선배'로 활약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입력 : 2018.01.13 07:01|조회 : 3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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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18.01.08.   photo1006@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18.01.08. photo1006@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의 영화 '1987' 관람 때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등 핵심 참모들이 동행했다. 임 실장의 경우 앞서 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의 '택시운전사' 관람 때 함께 했던 적은 있지만, 조 수석까지 나와 문 대통령과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정수석의 대통령 일정 동행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영화의 소재가 된 '6월 민주항쟁'은 그만큼 문 대통령과 참모들에게 갖는 의미가 크다. 실제 임 실장 이하 대통령비서실은 86(80년대 학번+60년대 출신)운동권이 주력이다. 직접 6월항쟁에 참여한 이들도 있고, 6월항쟁의 영향을 받아 학생운동을 전개한 이들도 많다. 그중 문 대통령, 임 실장, 조 수석의 경우 직접 6월항쟁에 뛰어들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지금은 청와대의 주역이지만, 당시는 6월항쟁의 주역이었다.

문 대통령은 1987년 당시 연대투쟁기구인 '국본'의 부산본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활동했다. 노 전 대통령이 상임집행위원장이었고, 문 대통령은 상임집행위원이었다. 자서전 '운명'을 통해 "6월항쟁의 중심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평할 정도로 당시 활동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페이스북을 통해 "1987년 1월 박종철의 죽음을 처음 알았다. '탁자를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발표를 들으면서 피 끓던 분노를 기억한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또 "2∼3일 후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아버지 박정기 선생의 댁을 찾아가 위로를 드렸다"고 설명했다.

영화 '1987' 관람에 앞서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와 관련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박씨에게 "(6월항쟁) 당시에 댁으로 찾아뵙고 했다"며 "그때는 아버님이 공무원이셨기 때문에 굉장히 입장이 난처하셨다"고 말했다. 박정기씨가 당시 "아들을 빨리 화장하라"는 당국의 압박에 시달렸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에 박종부씨는 "네 그랬다. 당시에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님하고 같이 (자신의 집에) 찾아오시고 그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영화 '1987'에 자신이 활약한 부산 국본 관련 내용은 안 나온다는 말을 듣고 "6월항쟁은 서울만 보여줘도 된다"며 "박종철 열사에 관한 것이라면 화장해서 재 뿌리는 것, 49재, 그런 장면이 특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임종석 실장의 경우 그 유명한 '임길동' 시절이었다. 신출귀몰한 학생 운동가로 이름을 날릴 때다. 임 실장은 1986년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에 입학하고, 1987년 노래패 '소리개벽'에 가입하며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6월항쟁 참여 등을 거쳐 1989년 전대협 의장에 올라 전국적인 명성을 쌓는다.

임 실장은 국회의원 시절인 2004년 9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1987년 6월 연세대 집회에 갈 때는 가발도 쓰고 화장도 하고 점도 찍어서 변장을 했다"며 "경찰이 알아보는 바람에 도망을 갔다가, 결국 모 언론사 기자의 차 트렁크에 들어가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고 당시의 활약을 회고했다.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2017.05.06.  since1999@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2017.05.06. since1999@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임 실장은 "당시 (경찰을 피해) 나무에 1시간 반을 올라가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다"며 "조금만 더 있으면 낙엽으로 배를 탔다는 소문도 돌겠더라"고 농담도 했다. 2004년 3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는 "7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그 시절에 운동을 했던 선배들을 보면, 좀 비장하고 희생적인 걸 겪어 왔다"며 "우리 때는 6월항쟁을 겪으면서 승리와 낙관이라는 것을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웠다"고 평가했다.

조국 수석은 박종철 열사의 부산 혜광고, 서울대 선배로 6월항쟁에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조 수석은 혜광고 시절에는 박 열사를 몰랐고, 대학교 시절 고교 동창회를 하면서 박 열사와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조 수석 본인의 말 대로라면 "간헐적으로 만나던 사이"다. '진중하고 진지했던 학생'으로 박 열사를 기억하고 있다.

조 수석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회고했다. 2012년 1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 수석은 "(박 열사가) 고문으로, 물고문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부르르 떨리더라"며 "당시 치안본부에 직접 전화를 했다. 스스로 흥분이 되어가지고, 전화를 해서 막 욕을 하고 고함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고 설명했다.

6월항쟁 활동에 대해서는 "당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주도를 했지만, (진실이) 차례차례 밝혀지는 과정에서 고등학교 동문들, 대학 선후배들이 모였다"며 "그 활동들이 쌓이고 쌓여서 진실이 밝혀지고, 그 뒤에 이어서 6월항쟁으로 가게 되었던 단초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박 열사의 죽음이 자신의 사회적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해왔다. 조 수석은 2012년 1월 또 다른 라디오 인터뷰에서 "6월항쟁의 시작점이 된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당시 저를 비롯한 젊은이들을 엄청난 부채의식 속에 살게 했다. 그것이 이 자리에 나를 있게 한 것 같다"며 "국가 형벌권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 것인가, 국가 형벌권은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제 전공으로 형사법을 택한 이유"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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