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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라스베이거스에 비가 내린다

[CES 2018/CES톡]

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라스베이거스(미국)=오동희 산업1부장 |입력 : 2018.01.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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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미국현지시간) 오전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CES)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에는 흔치 않은 비가 내리고 있다. 시내 MGM그랜드 호텔이 보이고 하늘은 비구름이 모여있다./사진=오동희 기자
9일(미국현지시간) 오전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CES)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에는 흔치 않은 비가 내리고 있다. 시내 MGM그랜드 호텔이 보이고 하늘은 비구름이 모여있다./사진=오동희 기자
라스베이거스는 에스파냐어로 '초원'이라는 뜻이지만, 푸른 초원이 넓게 펼쳐질 만큼 비가 풍부하게 내리는 곳은 아니다. 북위 36도 정도로 우리나라로 치면 충청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도의 도시다.

네바다주의 남쪽 끝인 모하비 사막에 위치한 라스베이거스는 3000m 이상의 고지대 산으로 둘러싸여 비가 드물다. 모하비 사막은 험지라 현대차 등 자동차 업체들이 극한 테스트를 하는 장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비를 몰고 올 수 있는 구름도 넘기 힘든 척박한 곳이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 1300~1400mm보다 10분의 1도 안되는 105mm 내외가 이곳의 연평균 강수량이다.

9일(미국 현지시간) 국제가전전시회(CES)가 개막한 이곳에 비가 쏟아졌다. 하루 전인 8일부터 추적추적 계속 내리더니 9일에는 많다고 할 정도다. CES 행사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운전수는 연신 '크레이지 데이'라며 빗길 운전의 불만을 얘기한다.

사실 비는 풍요의 상징이다. 비가 와야 곡식을 가꾸고, 농토가 비옥해져 삶이 풍성해진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는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비 없이 살 수 있는 삶을 선택했다. 그게 도박과 휴식을 매개로 한 계획도시 라스베이거스의 출발이다.

1905년 남캘리포니아와 솔트레이크 시티를 잇는 철도에 이어 1930년대 당시 세계 최대인 후버댐이 건설되면서 이 도시는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길을 열었다.

지금은 세계 최대 기술의 향연인 CES 2018이 동쪽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테크 이스트)와 르네상스라스베이거스를 필두로, 서쪽(테크 웨스트)으로는 팔라쪼, 베네티앙, 샌즈엑스포, 남쪽(테크 사우스)으로는 몽테 카를로, 파크 시어터, 아리아, 만달레이 베이 호텔 등에서 분산돼 열리고 있다.

전세계 내로라하는 IT 기업과 자동차, 헬스, 미디어 기업 등 4000여개 기업과 18만명 가량의 참관객들이 12일까지 이 도시 전체를 채울 예정이다. 본행사 개막 하루 전인 지난 8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앞다퉈 미디어를 대상으로 기술력을 뽐내는 장을 마련했다.

테크 사우스 지역인 만달레이 베이 호텔의 레벨2(2층)와 레벨3에선 삼성전자·현대자동차, LG전자·기아차가 신기술을 뽐냈다. 삼성전자 미디어 행사에는 참석자들이 자리를 잡지 못할 정도로 붐볐고, 특히 IT 전시회에 개근하고 있는 현대차의 행사가 열렸던 레벨2 오션C 지역은 큰 주목을 받았다.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에서 참석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프레스 컨퍼런스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의응답에 답하고 있다./사진=김남이 기자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에서 참석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프레스 컨퍼런스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의응답에 답하고 있다./사진=김남이 기자
이날 수소차 공개 행사는 어느 정도의 시나리오가 있었겠지만, 발표에 나서지 않았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수소전기차 앞에서의 기념촬영에 이어 즉석에서 진행된 외신기자들과의 일문일답식 현장 인터뷰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차세대 수소전기차인 넥쏘의 소개가 모두 끝난 후 현대차와 자율주행 기술협력을 하는 오로라의 크리스 엄슨 사장이 '이 에스 정'(정의선 부회장의 미국식 이니셜 E. S. CHEUNG)을 외치며 그를 무대 위로 불러 포토 세션을 진행했다.

거기까지는 예상됐던 일이었지만, 행사 직후 무대 위로 올라간 외신기자들은 정 부회장을 둘러싸고 수소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미래, 현대차 그룹의 전략들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CES를 찾은 전세계 기자들에 둘러싸여 쏟아지는 날카로운 질문들에도 능숙한 영어로 되받는 모습은 정 부회장의 자신감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현재의 현대차의 어려움이 어떤 것이든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이 엿보였다.

몰려든 기자들 사이에서 코끝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면서도 질문에 답하는 모습은 기업인이 서 있어야 할 곳은 척박한 사막이지만, 금맥을 찾을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자리였다.

뒤이어 저녁 6시 30분에 파크 시어터(Park Theater)에서 열린 브라이언 크르자니치 인텔 CEO의 기조연설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데이터의 힘을 경험하라'는 주제로 음악과 춤, 미니 드론쇼 등 다양한 축제 같은 이벤트로 청중의 시선과 갈채를 받았다.

반도체 매출에서 삼성전자에 뒤져 2위로 내려앉았다는 인텔의 모습은 현장에서는 볼 수 없었다. 크르자니치 CEO는 IT 업계의 맏형이자 반도체의 산증인 인텔의 수장이었지만 실리콘(반도체)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오직 데이터가 세상을 지배하며, 이에 대한 경험을 인텔이 제공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도체 회사 인텔이 '데이터 회사 인텔'로 창조적 파괴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비는 이 도시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여기서 펼쳐지는 전세계 IT 기업과 자동차 기업, 그리고 거기에 몸담고 있는 최고경영자들의 한판 승부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듯하다. 한국기업인들이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한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한다.
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
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1월 10일 (03:01)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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