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161.71 744.15 1128.40
▲5.45 ▲3.67 ▼3.7
메디슈머 배너 (7/6~) 조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10/18)
블록체인 가상화폐

1987 그해, 대학생이던 나는…31년뒤 펼치는 일기

놀던 학생도 박종철 사망에 거리로 뛰쳐나가…두려워서, 떨려서, 영화 못보는 이들도

머니투데이 김민중 기자, 이보라 기자, 강주헌 기자 |입력 : 2018.01.13 06:18|조회 : 17242
폰트크기
기사공유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 종로거리 한 차도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 종로거리 한 차도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생이던 서현덕씨는 놀기 바빴다. 독재, 민주화, 최루탄, 데모 같은 단어는 서씨의 관심 밖이었다. 서씨는 시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2학년 진학을 앞둔 1987년 1월14일까지는 그랬다.

그날 박종철 서울대생이 숨지고 고문치사 사건인 것으로 밝혀지자 서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친구, 내 친척이 죽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조그만 욕조에서 고문받으며 죽어갔다니. 마음 속에서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서씨는 뛰쳐나갔다. 같이 놀던 친구들도 발 벗고 나섰다. 점차 다양한 대학 출신의 학생들이 모였다. 그해 6월 이한열 연세대생이 최루탄에 맞고 쓰러지면서 거리는 더욱 뜨거워졌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운동권, 비운동권 구분 없이 많은 대학생들이 주먹을 쥐었다. 이런다고 세상이 바뀔까 싶기도 했지만 결국 변화를 일궈냈다.

그 과정이 힘겨운 것만은 아니었다. 부산대 경영학과 1학년생이던 정한섭씨는 뭉클한 기억이 많다. 정씨는 "대학생들이 데모하면 일반 시민들의 호응이 컸다"며 "차도를 걸으면 육교 위에서 천원짜리 지폐를 던지고 인도에서는 박카스를 나눠줬다. 전경한테 쫓기면 숨겨주는 상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6월 항쟁이 '공동체적 가치 추구'라는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줬다고 고백한다. 졸업 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일하던 정씨는 현재 사업을 한다. 수익의 5% 정도를 꾸준히 기부해왔으며 현재까지 기부액만 2억원에 달한다.

항쟁 30주년이던 지난해에는 30살 차이 나는 딸과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정씨는 "87년의 완성이 촛불시위로 이뤄지는 것 같다"며 "이번 개헌에는 당시에 반영하지 못했던 국민 기본권 부분을 시대에 맞게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복학생이던 성리현씨는 더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열흘 정도 다른 복학생들과 함께 예비군복 시위를 하긴 했다. 후배들이 열심히 데모하는데 복학생들도 뭔가 보여주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시위에 나선 학생들에 비할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차마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대학생들은 더 큰 부채의식을 떠안았다. 서울 한 대학 미대 1학년생이던 변수진씨는 시위가 무서웠다. 학교 로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5.18 민주화운동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시위대가 군홧발에 짓밟히고 피를 흘리는 모습이었다. '데모하면 저런 일이 생기는구나', '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요즘 변씨는 "그때 내가 좀 더 깨우치고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았다면…"이라고 후회한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 종로거리에서 한 여성 시위 참가자가 전경에게 꽃을 건네고 있다.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 종로거리에서 한 여성 시위 참가자가 전경에게 꽃을 건네고 있다.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최근 흥행하고 있는 영화 '1987'은 6월 항쟁 등 1987년에 벌어진 일련의 민주화 운동을 스크린에 담았다. 소위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권이 1987년 이후 30여년만에 개헌을 추진하는 가운데 많은 시민들에게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를 상기시키고 있다.

이한열 열사가 쓰러진 1987년 6월9일 당시 연세대 시위 현장에 있었던 오경환 서울시의원(51)은 최근 초등학교 6학년 딸과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이 열사가 최루탄에 맞는 장면에서는 울음을 참기 어려웠다.

연세대 문과대 학생회 간부(85학번)였던 오 의원은 화염병을 던지는 일명 '전투조' 뒤에서 행렬에 동참했다. 오 의원은 "영화를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며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힘을 모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채의식 없이 누구든 편하게 영화를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당시 대학 시절을 보낸 사람 중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를 보기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3학년이던 조혜정씨는 영화를 아예 안 볼 생각이다. 그때 희생된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서, 개인의 인생이 처참히 망가졌던 동료들이 생각나서다.

조씨는 1986년 11월 초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가두시위에 나섰다가 구속됐다. 그땐 여차하면 구속인 시절이었다. 1987년 2월 초 함께 구속됐던 선배가 접견을 나갔다가 박종철 사망 소식을 전해줬다. 다음 날 아침 점호시간 한 방에 있던 대학생 10여 명이 함께 구호를 외치기로 했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그러면 어디 끌려간다"며 학생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씨는 언론사에 들어가려 했지만 시위 전력 탓인지 줄줄이 낙방하고 결국 변호사가 됐다. 조씨 주변에는 비슷한 사연으로 법조인이 된 사례가 꽤 있다.

한국외대 무역학과 4학년생이던 이중원씨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 1987년 치열했던 날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너무 떨리기 때문이다. 무기계약직 우정실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현재 노동운동을 하고 있어 영화를 단순한 회고록으로 볼 수 없다"며 "나는 여전히 '1987' 속 그 길 위에 있다"고 밝혔다.

한쪽에서는 영화가 1987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운동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까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노동자 대투쟁(1987년7~9월) 등 영화가 조명하지 않은 중요 사건도 많다. 민주화 운동이 너무 감정적으로만 소비되면 안 된다는 우려도 있다.

전남대 의대 4학년생으로 시위에 참가했던 강정우씨는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꿈에 그리던 민주화를 만들어왔다"며 "이제는 민주주의를 성숙시켜야 한다.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복잡한 가운데 서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중
김민중 minjoong@mt.co.kr

산업2부 식음료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