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김의 NBA산책] 매직 존슨조차 당황시킨 '빅 마우스' 라바 볼

LA 레이커스의 '루키' 론조 볼(위). 아래는 골든스테이터의 스테판 커리. /AFPBBNews=뉴스1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녀를 스포츠 스타로 키우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스파르타식 맹훈련을 시키는 것은 물론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통제하며 앞길을 원격 조정해가는 극성 부모들이 있어 왔다.


세계적으로 보면 골프와 테니스 선수들 가운데 특히 그런 부모들이 종종 있었다. 미식축구에서는 과거 1990년대 미식축구 선수로 USC와 NFL LA 레이더스에서 뛰었던 쿼터백(QB) 토드 마리노비치의 케이스가 유명하다.

마리노비치의 아버지 마브 마리노비치는 아들 토드를 ‘퍼펙트 QB’로 만들기 위해 그가 어렸을 때부터 특별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그런 엄격한 트레이닝을 거친 그에겐 ‘로보 QB'라는 닉네임까지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기대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리다 마약에 손을 대면서 유망했던 커리어를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스러지고 말았다. 이후 ESPN의 한 칼럼니스트는 그의 아버지를 ’역사상 최악의 스포츠부모‘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미 프로농구 NBA의 LA 레이커스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은 지금까지 봐왔던 ‘극성 문제부모 스토리’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바로 레이커스의 루키 포인트가드 론조 볼의 아버지 라바 볼(LaVar Ball)의 이야기다.


라바 볼의 경우는 스파르타식 트레이닝으로 자녀를 옥죄는 것이 문제였던 과거 다른 문제 부모들과는 전혀 다른 케이스다. 그의 세 아들은 고교 진학 때까지 그가 코치한 팀에서 농구선수로 뛰었으나 그가 이들을 스파르타식 트레이닝으로 조련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다. 또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보통의 정상적인 선수 부모들과 별 차이가 없다.

라바 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가 말 그대로 ‘천상천하 유아독존’형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세 아들에 대한 그의 극도의 자부심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자신에 대해선 전 세계에서 자기보다 더 뛰어난 전략가이자 사업가는 없고 재능 평가 능력에서도 자기를 따라갈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또 자신의 세아들에 대해서도 그는 그들이 모두 비교할 상대가 없는 최고의 선수들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주입시키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부모가 자기 자녀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환상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라바의 경우는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미 지난해 초 자신의 큰 아들 론조가 스테판 커리보다 더 뛰어난 선수라고 주장했고 한 발 더 나가 그가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은 론조가 NBA가 아니라 아직 UCLA에 있었을 때였다.

론조 볼의 아버지 라바 볼. /AFPBBNews=뉴스1

그뿐만이 아니다. 그 자신에 대한 평가도 상상 초월이다. 그는 지난해 USA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내가 전성기 때엔 1대1에서 마이클 조던도 완전히 ‘죽여 놓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던은 내 점프 훅을 절대 막을 수 없다. 조던이 나를 막으려면 파울하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떠벌렸다.

참고로 라바 볼은 1987-88년 시즌 워싱턴 스테이트 대학에서 26경기에 나서 게임당 평균 2.2득점을 기록한 것이 대학선수 경력의 전부다. 그런 초라한 기록을 가지고 감히 ‘농구 황제’ 조던을 우습게 보는 발언을 미 전국지와 인터뷰에서 서슴지 않고 내뱉은 것이다. 당장 소셜 미디어를 통해 “별 미친 소리 다 듣겠네”라는 비난과 조소가 쏟아졌지만 그는 전혀 끄떡도 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그가 인정을 받는 것은 자신의 세 아들을 꽤 뛰어난 농구선수로 키워냈다는 것이다. 큰 아들 론조 볼은 대학농구의 명가 UCLA를 거쳐 지난해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2번으로 레이커스에 지명됐다. 둘째인 리안젤로 볼과 셋째인 라멜로 볼도 수준급 선수로 평가되고 있다. 라바 볼은 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직접 코치로 나서 이들을 키워냈고 자신의 아들 셋이 모두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것은 모두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무시하며 전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아들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심지어는 구단도 자기 아들을 제대로 키워내려면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훈수’를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NBA 구단들은 드래프트를 앞두고 론조 볼을 뽑을 경우 바로 이런 위험요소를 걱정했다. 레이커스의 경우 구단사장 매직 존슨이 라바로부터 “내가 아들을 조련하는 것은 여기까지며 이제부터는 구단에 맡기겠다. 나는 더 이상 아들 옆에서 오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낸 뒤에야 론조를 뽑았다.

하지만 라바의 ‘빅 마우스’가 오래 잠잠할 리가 없었다. 론조는 레이커스에서 루키로서 무난한 스타트를 끊었지만 라바가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 최고의 선수와는 거리가 먼 선수라는 사실을 드러냈으며 레이커스는 얼마 전까지 9연패를 당하는 등 시즌 13승27패의 전적으로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오히려 론조 바로 다음 순번에 보스턴 셀틱스에 지명된 제이슨 테이텀이 이미 올스타급 선수로 성장하자 많은 레이커스 팬들과 관계자들은 드래프트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매직존슨/AFPBBNews=뉴스1

그러자 라바는 지난달 공개적으로 레이커스의 루크 월튼 감독을 비판하고 나섰다. 기본적으로 레이커스의 부진은 아들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이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레이커스는 황급히 존슨 시장과 롭 펠린카 단장이 라바와 만나 상황을 봉합하고 논란이 더 커지는 것을 진화해야 했다. 당시 존슨은 라바에게 감독에 대한 공개비난을 자제하고 혹시 문제가 있다면 자기에게 직접 말할 것을 요구해 확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라바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레이커스가 9연패를 당하자 라바는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월튼 감독은 선수들의 지지를 상실했고 팀을 이끌 능력을 잃어버렸다. 아무도 그를 위해 뛰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폭탄발언을 터뜨렸다. 이어 “그들(구단 수뇌부)은 내 말을 듣기 싫을지 모르지만 내 말을 듣는다면 성공할 것이다. 난 내 아들이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레이커스는 일단 외부적으로 라바의 발언에 구단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NBA의 다른 감독과 관계자들이 일제히 라바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는 와중에서도 존슨 사장은 공개적으로 라바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월튼 감독에 대한 팀 차원의 지지발언조차 하지 않고 있다. 언론과 리그 쪽에서는 존슨이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레이커스측은 라바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다는 생각인 듯하다.

이런 논란에서 가장 난처한 처지에 놓인 사람은 바로 론조 볼이다. 아버지가 감독을 공개 비판하고 나선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에 반기를 들지 않는다면 자신의 감독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는 “아버지는 성인이고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로 일단 난처한 상황을 피했으나 이 일이 장기화되고 특히 계속 되풀이될 경우 팀내 입지가 더욱 좁아질 가능성도 충분하게 됐다. 더구나 라바의 입이 다음 타깃을 누구로 정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존슨 사장이나 지니 버스 구단주가 타깃이 될 수 있다. 많은 NBA 구단들이 걱정하던 ‘라바의 악몽’이 레이커스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