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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민주항쟁, 2018 대한민국 이렇게 변했다

[the300][대한민국 1987-2018]②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 30년 변화상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입력 : 2018.01.13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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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14일은 '6월 항쟁'의 불씨를 당긴 고(故) 박종철 열사 사망 31년이 되는 날이다. 머니투데이는 '영화 1987' 신드롬을 통해 대한민국의 31년전과 오늘을 짚어 봤다.
 6월 항쟁 30주년인 10일 오후 시민들이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민주대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광주 남구 서현교회 앞에서  &#39;6월 민주항쟁 30주년 광주 기념식&#39;이 열리는 동구 5·18 민주광장까지 민주대행진을 했다. 2017.6.10/ 뉴스1  <저작권자 &#169;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6월 항쟁 30주년인 10일 오후 시민들이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민주대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광주 남구 서현교회 앞에서 '6월 민주항쟁 30주년 광주 기념식'이 열리는 동구 5·18 민주광장까지 민주대행진을 했다. 2017.6.10/ 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87년 6월 국민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광장에 나섰다.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희생 끝에 국민들이 독재 정권을 몰아냈다. 30여년이 흘렀다.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그동안 독재 정권은 사라졌다. 높은 빌딩들이 서울을 가득 채웠고 국내총생산(GDP)은 10배 증가했다. 먹고 사는걸 걱정해야했던 '그 때'에서, 저출산과 취업을 걱정하는 '지금'으로 변했다. 비정규직과 실업 등 다른 '고민'들이 생겨나긴 했지만 '그 시절' 폭압과는 비교가 어렵다.

◇사라진 '군부독재', '국정농단'은 평화시위로 심판 = 1972년 박정희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명분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신설했다. 유신헌법이 근거였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박정희에 표를 몰아줬다. '체육관 선거'는 1979년 10월 박 전 대통령 사망 후에도 이어졌다.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이듬해 전두환을 제11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1981년에는 다시 헌법을 뜯어 고쳤다. 국민이 뽑은 선거인단 5000여명이 대통령을 뽑은 간접선거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무력으로 야권 정치인 등을 제거한 뒤 치뤄진 선거에서 당선된 12대 대통령은 다시 전두환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은 노태우 당시 민정당(여당) 대표의 6ㆍ29선언을 이끌었다.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다.

정권교체는 실패했다. 김대중과 김영삼, 두 야권주자가 분열하면서다. 결국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가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론 매 5년마다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았다. 김영삼의 문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를 거쳤다. 2008년에는 정권이 교체됐다.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이 9년 간 집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로 지난해 3월 탄핵되는 수모를 겪었다. 국민들이 다시 광장으로 나와 탄핵을 요구했다. 국회가 이에 응했다. 폭력 대신 평화로 이룬 결과다.

◇만연했던 정경유착, 국내 최대기업 총수는 감옥에 = 80년대 독재 정부와 대기업들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줬다. 산업화 과정에서 대기업들은 각종 특혜를 약속받는 대신 정치자금을 지원했다. 대기업의 '경제권력'이 정치권력 못지않게 막강해졌다.

양적 성장을 위해 개혁은 뒤로 밀렸다. 6월 민주항쟁 이후 대규모 기업집단 제도와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정경유착의 뿌리는 깊게 박혔다. '대놓고' 주던 분위기가 각종 편법을 활용한 음성적인 지원 추세로 달라졌을 뿐 본질은 이어졌다.

결국엔 곪은 상처가 터졌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뇌물 제공 혐의로 구속됐다. 새로운 기업도 많이 생겼다. 김대중 정부 때 싹튼 벤처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몸집이 커진 일부 IT 기업은 점점 혁신과 멀어진다.

◇끝나지 않은 노동자투쟁, 입지 강화됐지만=1987년 노동자들은 6월 항쟁 이후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해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전개했다. 이전까지 노동운동은 경공업 여성노동자 중심이었지만 이때부터 중공업 남성노동자 중심으로 번져갔다.

그때 현대그룹에도 노조가 생겼다. 고 정주영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노조는 허락될 수 없다"고 했지만 노동자들은 "그러면 당신 눈에 흙을 넣어주겠다"며 강성노조를 결성했다. 이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각종 노조가 생겨났고 힘은 배가됐다. 하지만 ‘노동’이 아닌 ‘노조’. 특히 대기업 중심의 노조에 매몰되면서 영향력은 오히려 반감됐다. 비정규직, 일자리, 근로시간, 최저임금 등 노동 현안을 풀 주체 역할 대신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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