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 대박 꿈에 사표… "막을 수도 없고" 기업들 뒤숭숭

/삽화=김현정 디자이너

#국내 한 대기업에서 R&D(연구개발) 업무를 하던 이씨(29)는 지난해 말 회사를 그만뒀다. 촉망받던 엘리트 이공계 사원이 입사 2년 만에 회사를 나온 이유는 가상통화(암호화폐) 전업투자자로 나서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지난해 그간 모은 돈과 대출금 등을 합쳐 가상통화에 투자해 약 30억원을 벌었다.

이씨는 "대기업에서 고연봉을 받았지만 가상통화로 벌 수 있는 게 더 클 것으로 생각했다"며 "투자목표액 100억원을 달성해 '빌딩투자가'가 되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고 했다.


#국내 기업에서 사내교육을 맡은 김씨(35)는 지난해 교육 시간에 스마트폰 사용 금지 조항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교육 시간 중엔 스마트폰 사용을 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부득이한 경우엔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상통화 거래 열풍이 불면서 많은 직원이 가상통화 거래를 하느라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잖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특히 젊은 직원들이 스마트폰을 보는 사례가 많다"며 "가상통화에 대한 직원들 간 정보교환이 늘면서 가상화폐 투자 동호회가 생긴 곳도 있다"고 말했다.

가상통화 열풍에 일반 기업들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24시간 거래'라는 가상통화 시장 특성상 회사원들의 가상통화 투자로 근무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급등락을 반복하는 가상통화 시세 확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직원들이 거래하는 것을 일일이 잡아낼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거래를 금지하는 강제적인 조치 등을 시행하기도 어렵다.

A 기업 관계자는 "근무시간에 주식거래를 포함해 근무 외 모든 행위는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가상통화 투자하는 것을 일일이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했다.

B기업의 한 관계자도 "근무 중 가상통화 거래금지는 가령 근무 중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사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할 때 회사 기강 확보 차원의 지침을 마련해 전달할 순 있지만 가상통화 관련해선 아직 제재안을 마련하거나 통보한 경우가 없다"고 덧붙였다.

업무 비효율성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가상통화 거래금지 등의 내부조치도 취할 수 없어 답답하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은 전언이다.

C기업 관계자는 "정부에서조차 가상통화 관련 규제를 두고 오락가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기업이 무슨 조처를 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가상통화 '한탕주의'라는 사회 분위기가 하루빨리 안정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