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것도 빨리빨리"…밥 안먹고 낮잠자는 '패스트힐링족'

서울 종각에 위치한 안마카페 '미스터힐링' 내부. /사진=한지연 기자

16일 오전 11시20분, 서울 광화문 근처에 위치한 한 안마카페.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을 청하려는 직장인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낮 12시13분쯤 이 곳을 찾은 양모씨(34)는 "점심시간이 짧아 편의점에서 대충 식사를 떼우고 왔다"며 "피곤할 때면 한달에 한번 정도 온다"고 말했다. 만원이 조금 넣는 돈을 내면 50분 동안 안마기계를 이용할 수 있다.


잦은 야근과 회식·술자리로 인한 피로와 수면부족을 호소하는 직장인들 사이 '패스트힐링'(Fast Healing) 열풍이 불고 있다. '패스트힐링'은 말 그대로 '빠르게 힐링한다'는 의미로, 패스트푸드처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휴식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패스트힐링'을 즐기는 직장인들은 대부분 점심시간을 이용한다. 이들은 밥을 포기하고 잠을 청하려 낮잠카페, 안마카페를 찾는다.

안마카페 관계자는 "광화문과 종각 근처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다'며 "평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는 안마기계 13대가 꽉 차고 대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을 쪼개 '패스트힐링'을 즐기려는 직장인들은 잠이 부족해 어쩔수 없이 낮잠을 잔다고 말했다. 1주일에 한 번은 꼭 낮잠카페를 찾는다는 직장인 고모씨(28)는 "회식이나 야근 다음날이면 꼭 낮잠카페를 찾는다"며 "점심시간말고는 편히 쉴 시간이 없어 밥을 포기하더라도 잠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신한트렌드연구소가 지난해 6월 발표한 '패스트힐링업 고객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패스트힐링업의 카드 결제액은 2015년 하반기에 비해 1년 만인 2016년 하반기에 평균 135% 성장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패스트힐링'족을 잡기 위해 영화관도 낮잠카페로 변신했다. 여의도 CGV는 점심시간에 이용객들이 낮잠을 잘 수 있는 '시에스타'(Siesta·낮잠)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침대처럼 180도 젖혀지는 리클라이너 좌석에서 90분 동안 낮잠을 즐길 수 있어 여의도 일대 직장인이 많이 찾는다. CGV 관계자는 "시행 초기에 비해 이용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일명 '월요병'이 심한 월요일에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오피스 밀집 지역에 위치한 병원들은 '패스트힐링'족을 잡기 위해 다양한 수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늘·미백·비타민 주사 등 수액을 맞으며 낮잠을 즐길 수 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패스트힐링'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밤 잠이 부족해 쓰러지듯 빨리 낮잠을 잔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2016년 한국인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41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시간22분)보다 41분이나 짧다. 1년으로 따지면 1만4965분이나 조금 잔다.

전홍준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면이 부족하면 피로가 누적됨에 따라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기분도 저하된다"며 "업무 효율성이 낮아지고 특히 운전을 하거나 위험한 기계를 다루는 사람에겐 치명적 위험이 될 수도 있다"고 수면부족에 대해 경고했다.

하지만 전 교수는 "피곤이 누적돼 어쩔수 없을 경우, 낮잠은 필요하다"면서도 "젊고 건강한 사람 기준, 낮잠을 잔다는 것은 야간 수면이 충분하지 않다는 신호기 때문에 야간 수면 질이 불량하지 않은지 먼저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낮잠을 자더라도 가장 졸린 시간과 근무 리듬, 사회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규칙적인 시간에 20분 내외로 자는 것이 가장 좋다. 전 교수는 "밤에 잘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낮 시간을 활력있게 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