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옛 주인 고소한 이유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오른쪽)/사진=머니투데이 DB

현대상선 (14,540원 ▼120 -0.82%)이 옛 주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을 15일 배임 혐의로 고소하고, 이튿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간담회까지 열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과거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틱스) 매각 과정에서의 '부당한 계약 체결'이 현재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주장하면서 옛 주인인 현대그룹의 현 회장에게 칼끝을 겨눈 것이다. 현대상선은 향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롯데그룹과 매각 계약을 무효화하는 민사소송까지 벌이겠다고 했다.

회사를 대표해 법무 책임자로 나선 장진석 현대상선 준법경영실장은 16일 서울 연지동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현대상선이 과거 현대로지스틱스 주식과 신주인수권을 공동 매각하는 과정에서 현대로지스틱스 매각가격을 높이기 위해 15건의 부당한 계약을 체결한 것을 발견했다"며 "이로 인해 현대상선의 유동성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현대그룹이 2014년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당시 47.7%의 지분을 가진 현대상선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구조를 설계토록 했다는 설명이다.

◇매각 과정 중 3개 세부 사항 문제삼아=15건의 계약 중 이번에 현대상선이 문제삼은 부분은 △후순위 투자(1094억원) △영업이익 보장(연 161억5000만원) △국내외 육상운송, 항만서비스사업에서 5년간 독점적으로 현대로지스틱스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계약이다.


이 중 영업이익 보장은 현대로지스틱스의 해외 인터모달(내륙운송)과 피더사업(근해운송) 연간 영업이익이 162억원에 미달하는 경우 미달분 만큼을 현대상선이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에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현대상선은 롯데글로벌로지스와 약정된 에비타(EBITDA,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수준을 달성하지 못해 후순위 투자금액 전액이 상각되는 손실을 입었다.

장 전무는 "매년 영업이익을 보장해주는 계약에 대해서는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당시 현대로지스틱스 지분 매각을 의결하는 이사회가 열려 (큰 그림인) 매각을 의결했고 세부 사항은 현대상선 대표(당시 이석동, 이백훈 공동대표)에 위임한다고 결정했다. 그 당시 법률적 검토를 모두 거쳤다"고 반박했다.

당시 현대상선과 현대로지스틱스는 각각 해상운송과 육상운송을 맡아 하나의 회사처럼 일하고 있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그 이전에는 현대상선의 1개 사업부서이기도 했다.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후 3년 지나 고소=2014년 매각 이후 3년이나 지나 고소를 제기한 데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장 전무는 "해당 건 매각과 관련한 경제적 효과들이 발생한 것은 그 이후 일"이라며 "2016년에 채권단 실사를 하면서 악성 계약을 충분히 검토했다. 유창근 사장 취임(2016년 9월) 후 검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 회장 등의 배임 여부를 결정하는 단초가 될 수 있는 부분, 즉 후순위 투자를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했다. 그는 "매각 제안은 수사에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고소를 두고 현대상선 안팎에서는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이 오는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가운데 경영 감시·감독 주체인 KDB산업은행으로부터 경영정상화 및 비용절감에 대한 책임추궁을 받자, 현 회장 등 전직 경영진에 일부 책임을 묻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옛 주인이 자신(현대상선)을 구하기 위해 현대로지스틱스·현대증권 지분 매각 등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했고, 이로 인해 경영정상화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점은 잊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현대상선은 2016년 7월 현대그룹과 계열 분리됐고, 현재 산업은행을 대주주로 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2014년 6월 현대증권 지분 매각까지 완료하면서 자구안 이행 실적 3조7487억원(표)을 기록했고 선제적 구조조정 작업을 완료했다. 2013년 말 현 회장이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발표한 자구안(3조3000억원) 보다 4000억원이 넘는 유동성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를 두고 2016년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현 회장이 한진해운이나 한진그룹과 달리 '팔 하나를 자르는 결단'을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그 결과 현대상선은 글로벌 14위 선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일 원양선사로 채권단의 선택을 받았고,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2016년 9월 법정관리 개시, 2017년 2월 파산선고를 받아들였다.

자구안을 이행할 때와 경영정상화를 종료한 지금 상황에서 '바뀐 것'은 현대상선의 경영진, 산업은행의 경영진이다. 공교롭게도 2016년 당시와 2018년 1월 현재 산업은행 회장의 이름은 이동걸로 같다. 동명이인이다. 경영에 대한 감시·감독 책임 역시 당시도 산은, 지금도 산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