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교육감 요구에 등 떠밀려 '유치원 영어금지 '추진?

(서울=뉴스1) 김재현 기자 =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각 시도교육감들이 지난해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뉴스1 DB© News1 김명섭 기자

교육부가 논란이 컸던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방침을 오는 3월부터 무리하게 추진하려 했던 까닭은 시·도교육청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시·도교육청이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강력히 요청했고, 교육부는 현장의 의견이기도 한 교육청 입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어 진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파장이 큰 정책임에도 교육부가 뚜렷한 대안이나 방향 제시 없이 떠밀리듯 추진하려 했다는 비판적인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정부의 교육자치 확대기조에 따라 시·도교육감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이들이 향후에도 이번 사례처럼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18일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검토한 것은 교육감들의 강력한 요구에서 비롯됐다"며 "현재 상황에서 교육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관련 브리핑에서도 이번 사안 실무 총괄자인 신익현 교육복지정책국장이 비슷한 취지의 내용으로 말한 바 있다. 신 국장은 "교육청 측에서 교육부 지침으로 올 3월부터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해달라는 요청이 굉장히 강했다"고 말했다.

13명의 진보교육감이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라는 한목소리를 낸 게 교육부를 움직이게 한 것으로 보인다. 진보교육감 출신인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취임 이후 진보교육감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고 해당 교육청 인사들도 교육부에 대거 유입됐기 때문이다.

보수교육감들이 동조한 점도 한몫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보수교육감이 수장으로 있는 한 교육청에서는 지난달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방침을 정하고 한 발 앞서 일선 현장에 이런 지침까지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도교육청이 공식적으로 교육부에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요청한 것은 지난달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1월 정기총회(13일)를 앞두고 이를 안건으로 상정하면서다. 이들은 교육부 지침으로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시·도교육청은 특히 유치원·초등학교간 영어교육 정책의 모순을 우려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당장 올 3월부터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 후 과정에서 영어교육이 금지된다. 하지만 그 이전인 유아단계에서는 방과 후 영어수업에 대한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공통지침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현재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2개 교육청(세종·제주)만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하고 있다.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세종은 사립유치원이 1곳도 없고 제주도 국공립유치원 비율이 높아 유치원 방과 후 영어수업을 제한할 수 있지만, 서울·경기 등은 사립유치원 비율이 현저히 높아 사실상 어렵다"며 "교육부가 공통지침을 마련해주면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를 전적으로 현장의 의견으로 받아들이고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추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해 당사자인 학부모의 강력한 반발을 예상치 못했던 것도 그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 국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영어교육 전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시인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중앙부처 중 하나인 교육부가 중심을 잡지 못 하고 교육청 의견에 따라 휘둘린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권한을 시도교육청에 단계적으로 이양하면서 '17개의 교육부가 생기는 거 아니냐'하는 우려가 많은데, 이번 사례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질까 우려스럽다"며 "교육부는 교육청의 입장만 고려할 게 아니라 국민과 교육주체의 의견을 더 우선해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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