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과 체험공간으로 무장, 생존 모색나선 유통 산업

이진성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 겸 롯데엑셀러레이터 대표

최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 2018'에서는 이색적인 만남이 있었다.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의 허버트 졸리 회장이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AI(인공지능)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사실 기술 발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산업 중 하나가 유통이다. 인공지능(AI), 가상·증강현실(VR/AR),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 혁명의 주된 기술 요소들이 유통산업에 본격 도입되고 있다. 특히 유통은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산업이어서 관련 기술이 소비자들의 실제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 유통이 급격히 성장하는 반면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이 정체기를 맞은 배경 중 하나도 기술 발전이다. 실제로 미국 유통시장을 대표했던 백화점 체인 '시어스 홀딩스'는 시어스 백화점 매장 39곳과 K마트 매장 64곳 등 103개 매장을 오는 3~4월 폐점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딜로이트가 최근 발간한 'Global Power of Retailing 2018' 보고서에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약진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2011년에는 유통기업 랭킹 157위였는데 5년이 지난 2016년에는 6위로 올라섰다. 유통시장 선두는 여전히 월마트, 코스트코, 크로거 등 오프라인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몇 년 내에 아마존에 역전 당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해 유통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아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IoT, AI, 블록체인 등 4차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소비자 편의성을 높이려는 접근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유통을 대표하는 아마존은 당초 음성비서로 출시된 알렉사를 IoT 허브로 진화하는 작업중이다. 우버, BBC 뉴스 등 다양한 앱과 연결해 앱에 관련된 명령을 손쉽게 처리해주는 역할을 강화해 궁극적으로는 알렉사를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인공지능 쇼핑 가이드가 고객의 성향에 맞는 상품을 검색해 추천하는 챗봇을 개발해 유통 매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인공지능 쇼핑 가이드 '로사', 현대백화점의 '딥스캔', 신세계백화점의 인공지능 고객분석 프로그램 'S마인드' 등은 고객 취향 분석을 통해 세일 및 쇼핑정보를 개인화해서 제공한다.

유통 기업의 또 다른 생존 전략은 차별화된 경험과 체험이 가능한 놀이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의 미네소타주에는 '몰 오브 아메리카(MOA)'라는 쇼핑몰이 있는데 비디오 게임공간인 게임웍스와 하드록 카페, 롤러코스터 등까지 갖추고 있다. 국내 쇼핑몰도 경험과 체험 중심의 유통채널로 발전하고 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의 경우 쇼핑공간 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아쿠아리움, 어른들의 놀이터가 되는 가상현실 게임, RC카 등 키덜트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쇼핑몰은 관광객을 유입시키는 효과가 크다.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돌핀몰은 쇼핑매장 뿐 아니라 영화관, 볼링장, 게임 시설 등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으면서 연간 방문객 수가 3600만명에 달한다. 이 중 외국인 관광객이 2300만명으로 내국인보다 더 많다. 돌핀몰을 운영하는 로버트 터브먼 회장은 "대형 복합쇼핑몰은 테마파크보다 관광객 유입 효과가 크다"며 "관광객들은 단순 쇼핑이 아니라 식사, 여가 활동 등을 함께 하길 원한다"고 했다.


복합쇼핑몰이 창출하는 일자리 규모도 상당하다. 롯데월드몰에서 만들어진 일자리가 2500명 이상인데, 이는 네이버나 카카오 등 대형 IT 기업의 고용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악인 9.9%에 달했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유통산업은 백화점과 할인점에 이어 복합쇼핑몰 등 소비자 니즈를 반영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며 성장해 왔다. 특히 최근 소비자에게 쇼핑을 넘어서는 여가 생활에 즐거움을 제공하는 복합쇼핑몰은 고용 창출 효과가 매우 크다. 복합쇼핑몰의 순기능, 즉 고용 창출과 소비자 후생 등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정부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