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업으로 등록해 놓고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운영

고객들에게서 받은 가상통화 투자금을 가상통화 거래사이트의 법인 대표 명의의 계좌나 대주주 계좌로 이체한 경우가 적발됐다. 중국과 무역업을 하는 법인으로 등록해 놓고 실제로는 가상통화 거래사이트를 운영한 곳도 있었다.

은행이 가상통화 거래사이트에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하자 가상계좌를 갖고 있는 일반 업체가 가상통화 거래사이트에 가상계좌를 재판매한 경우도 확인됐다. 은행들은 이같은 의심스러운 거래에 대해 확인하지 않았고 계좌를 개설한 고객이 가상통화 거래사이트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금융당국이 23일 공개한 '가상통화 거래 관련 6개 은행 실태점검' 결과에 따르면 가상통화 거래사이트의 의심스러운 거래 실태가 드러났다.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A사는 '가'은행 등 5개 은행의 계좌를 통해 이용자의 자금을 모아 A사 명의의 다른 계좌('가'은행)로 109억원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 중 42억원을 대표자 명의의 '가'은행 계좌로, 33억원을 사내이사 명의의 '나'은행 계좌로 이체했다. 투자자의 돈이 임원 계좌로 옮겨간 것이다.


가상통화 거래사이트가 다른 가상통화 거래사이트의 여러 계좌로 자금을 이체한 경우도 있었다. B사는 '가'은행 등 4개 은행의 계좌를 통해 이용자의 자금을 받아 B사 사내이사 명의의 '가'은행 계좌로 586억원을 집중시켰다. 이후 576억원을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C사 명의의 '마'은행과 '가'은행 계좌로 376억원과 200억원씩 이체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거래 목적을 확인한 결과 B사에 가상통화가 부족해 C사에서 구매하기 위한 거래였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이 입금한 투자금이 대주주 계좌로 이체된 경우도 있었다.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D사는 가상계좌를 통해 받은 투자자의 자금 중 150억원을 지난해 12월 대주주인 ㈜OO사로 이체한 것이 확인됐다.

이런 의심스러운 돈의 흐름이 횡령 등 불법행위인지는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금융당국은 가상계좌가 아니라 이처럼 법인계좌나 임직원 개인계좌를 투자자의 집금계좌로 이용할 경우 사기, 횡령, 유사수신 등의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 법인계좌에서 거액의 자금을 인출한 후 여타 거래소로 송금하는 경우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상통화 거래사이트 법인과 투자자 개인 자금의 혼재로 인한 회계관리 불투명으로 투자자 피해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처럼 가상계좌가 아닌 법인계좌나 임직원 명의의 개인계좌로 투자자의 자금을 받아 운영하는 거래사이트만 60여개에 달한다. 이번에 검사를 받은 6개 은행 기준이라 전체 은행권으로 확대하면 이 숫자는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금거래가 이처럼 불투명한데도 은행들의 감시는 허술했다. 가상통화 거래사이트가 일반계좌를 가상통화 집금계좌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를 파악하지 못해 의심거래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에는 중국과 무역업을 하는 법인으로 등록해 놓고 실제로는 가상통화 거래사이트를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며 "법인계좌를 통해 입출금 거래가 무수히 일어나고 있음에도 은행은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은행에 신규 계좌 개설시 제출한 사업자등록증 등에 가상통화 취급업소라고 표시한 법인인데도 강화된 고객확인을 하지 않은 은행도 있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특정금융정보법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사항은 발견되지 않아 은행들에 대해 당장 제재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며 "앞으로 상시점검 과정을 통해 법령 위반사항이 나오면 엄중히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