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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58년 개띠'] 조형기 "격변 통해 얻은 무한 스토리가 생존 비결"

[릴레이 인터뷰] ⑤ 드라마-예능 '감초 1인자' 탤런트 조형기…“단 한마디 대사도 마다하지 않아”

문화를 일구는 사람들 머니투데이 일산=김고금평 기자 |입력 : 2018.01.27 06:43|조회 : 9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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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띠 앞에 연도를 붙이는 간지는 ‘58년 개띠’가 유일하다. 이 상징이 설명하듯 58년 개띠 출생자들은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주역으로 회자한다. 90만 명에 이르는 최다 출생자로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세대다. 생존 경쟁이 치열했지만 고교 평준화 입시제도를 통해 평등의식을 배우고, 가장 일할 나이인 30대 후반 외환위기인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겪으며 단합에도 앞장선 이들은 ‘위’로부터 눈치보고 ‘아래’로부터 자극받는 ‘낀 세대’의 전형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2018년 60세, 58년 개띠들은 이제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치열한 과거를 딛고 찬란한 현재를 거쳐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는 문화예술계 ‘58년 개띠’ 5명의 인생을 따라가봤다.
'탤개맨'(탤런트+개그맨)의 시작을 알린 조형기는 스크린보다 예능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25년 가까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58년 개띠답게 나서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중립적 태도가 장기 생존의 비결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일산=김고금평 기자<br />
'탤개맨'(탤런트+개그맨)의 시작을 알린 조형기는 스크린보다 예능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25년 가까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58년 개띠답게 나서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중립적 태도가 장기 생존의 비결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일산=김고금평 기자

예능으로 시작해 배우로 진출한 예는 적지 않았으나, 배우가 예능으로 전직(?)한 경우는 드물다. 악역이라도 나름의 ‘품격’을 고수하는 배우가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예능에 과감히 발을 디딘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다. 선 굵은 배우라면 더욱 그렇다.

탤런트 조형기는 그런 모험과 실험에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예능에 뛰어들었다. 숨어있던 끼는 예능에 의해 발굴됐고, 예능을 위해 존재했다. 예능 적응력이 얼마나 좋았는지, 큰아들이 아빠의 코믹 연기 한 편을 보고 그날 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아빠는 개그맨보다 더 웃긴다. 우리 아빠는 탤런트일까, 개그맨일까. 탤개맨이라고 불러야지.”

1994년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게스트로 예능을 시작한 그는 예능 판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카펜터즈의 ‘톱 오브 더 월드’(Top of the world)를 음정도 박자도 없는 콩글리시 발음으로 불러 듣는 이의 배꼽을 간질였고, 기타 전주를 ‘좌우지 장지지지~’로 표현해 당시 최대 유행어의 주인공이 됐다.

예능에서 뜻밖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도 그는 ‘조연’ 또는 ‘게스트’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았다. 언제나 메인 MC 옆자리에 앉아 훈수 두는 역할에만 머물렀다. 그러면서 선배는 챙기고 후배는 돌보는 중간 다리 역할도 마다치 않았다.

이 모든 ‘변신’과 ‘충신’ 이미지는 그의 연기관과 맞닿아 있다. “단 한마디의 대사라도 꼭 필요한 역할이면 어떤 것도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1982년 MBC 15기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주로 특집단막극에서 개성 강한 악역을 맡은 그는 예능으로 변신에 성공했고 드라마와 영화, 예능을 오가며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래 버틴 힘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오늘 인터뷰 주제에 답이 있다”고 웃었다. “58년 개띠들이 살아온 환경 때문인지 힘 조절과 분수를 잘 알거든요. 위아래 사이에 늘 끼어있어 눈치도 빠르고 ‘오버’도 하지 않죠. 적절한 생존력은 아주 타고난 것 같아. 하하하.”

지난해 12월 20일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만난 그는 180cm의 훤칠한 키에 청바지를 앞세우며 ‘청춘’을 자랑하고 있었다.

-베이비붐 세대 중 가장 많은 세대로 어린 시절이 쉽지 않았겠습니다.

탤런트 조형기. /일산=김고금평 기자<br />
탤런트 조형기. /일산=김고금평 기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는데, 반 학생이 100명 정도였어요. 오전반 오후반이 있었으니, 한 반에 200명이라고 봐야죠.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에 운동장에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여의도 교회 부흥회 같은 그림이랄까. 조회 끝나고 반에 들어갈 때도 혼란을 방지하려고 음악에 맞춰 순차적으로 들어갔다니까요.”

-‘58년 개띠’의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요.

“우리 세대는 60년생들하고 삶의 질이 완전히 달랐어요. 역사의 수레바퀴에 걸리는 독특한 세대였죠. ‘뺑뺑이 1기’에 장발 단속, 야간 통행금지까지 조금씩 다 경험해 봤으니까. 60년생만 해도 그런 걸 경험해보지 않았거든요. 통행금지 해제가 1년에 딱 두 번 있었는데, 12월 24일과 31일이에요. 공식적으로 밤 12시 넘어 땅에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할 기회였죠. 21살에 입대하고 나서 일병 때 12·12사태(신군부세력의 군사반란사건)가 나고, 상병 때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어요. 그때 입대 안 하고 대학 다니던 친구들은 대부분 자주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요.”

-치열한 삶을 살았는데도, 애매한 세대라는 수식이나 평가가 많습니다.

“실제로 그랬어요. 우리가 뺑뺑이(무시험 추첨제)로 고등학교에 가면 이미 시험을 통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공부 잘하는 선배와 선생님 눈에는 정말 수준 낮은 애들이 처음 들어온 셈이니까. 방정식 하나 못 푸는 58년생들이 한 반에 20%는 됐을 거예요. 어중간한 성적으로 얼떨결에 들어가 한 단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우리는 그야말로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이 적지 않았어요.”

조형기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모인 보성고에 진학했다. 공부보다 팝송을 더 좋아했던 그는 학창 시절 내내 ‘재미있는 학생’으로 기억됐다. TBC 공채탤런트 1기 출신으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꽤 유명한 배우였던 아버지 조항을 따라 배우의 꿈을 키웠지만, 이내 접었다. 폐결핵으로 40세 나이에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림자가 될까 걱정하던 어머니 때문이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그는 고교 졸업 후 외삼촌이 운영하던 스키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결국 연기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탤런트 조형기는 &quot;단 한마디의 대사라도 꼭 필요한 역할이면 어떤 것도 한다&quot;는 연기관으로 방송활동에 매진했다. 1994년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게스트로 예능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좌우지 장지지지'라는 당시 최고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일산=김고금평 기자<br />
탤런트 조형기는 "단 한마디의 대사라도 꼭 필요한 역할이면 어떤 것도 한다"는 연기관으로 방송활동에 매진했다. 1994년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게스트로 예능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좌우지 장지지지'라는 당시 최고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일산=김고금평 기자

-배우에 대한 열망을 감추지 못했나요.

“어릴 때부터 최무룡, 박노식 선생들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면서 익숙했던 것 같아요. 배우 보기 귀한 시절에 전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봐 왔으니까요. 아버지 편찮을 때도 보온병에 한약 담아 극단에 가면 늘 배우들과 인사하고 얘기했어요. 배우가 제겐 특수한 직업으로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아버지가 낡은 옷에 라이터 불을 붙이고 망치로 때리고 하는 ‘연기’를 보면서도 일상처럼 해석하기 일쑤였거든요.”

-단역, 악역을 줄곧 맡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견딘 힘을 찾는다면요.

“그런 인내력이나 긍정성이 돋보이면 주변에서 다들 ‘58년 개띠’를 들먹이는데, 개가 나름 충성심 강한 동물 아닌가? 하하. 실제로 58년 개띠들은 선후배 간에도 충성심이 많아요. 우리 선배들은 삽도 안주고 땅 파라고 하고, 돈도 안 주고 담배 사오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 우리는 토 안 달고 그걸 완수했거든요. 56, 57년 선배들이 그렇게 하던 전통이 58년부터 깨졌어요. 우리는 땅 파라고 하면서 삽을 줬고, 심부름시키면 돈도 쥐어 줬어요. 선후배 사이에 교량 역할을 충실히 해낸 세대라고 봐요.”

-장기 생존력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낀 세대의 좋은 점은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사회 변화가 있을 때마다 우리 세대는 늘 그 변화를 직접 목격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겠어요. 아련히 갖고 있던 어린 시절 먹었던 불량 식품 문화나 원더우먼, 소머즈, 600만불의 사나이 같은 영화 등 후배들은 모르는 스토리는 물론이고, 지금 현재 벌어지는 세상 이야기도 ‘잡식’처럼 받아들이려고 하죠. 위아래 스토리를 가지고 촉매 역할을 담당하다 보니, 예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방탄소년단이나 트와이스는 잘 몰라도 2am, 2pm 정도까지는 충분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연결성은 있다고 봐요.”

탤런트 조형기는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로 '스토리'를 꼽았다.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얻은 수많은 경험들이 윗 세대와 아래 세대를 연결하는 스토리로 생성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일산=김고금평 기자<br />
탤런트 조형기는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로 '스토리'를 꼽았다.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얻은 수많은 경험들이 윗 세대와 아래 세대를 연결하는 스토리로 생성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일산=김고금평 기자

-하루가 다르게 사회 변화 속도가 빠릅니다. 58년 개띠의 적응력은 유효한가요.

“우리 세대는 자의에 의해, 무엇을 개척하고 바꾼 게 아니라 시대 흐름이나 상황에 맞춰 살아남았을 뿐이에요. 중추 세력도 아닌, 늘 애매한 위치에서 살아 남아야했죠. 지금 방송은 거의 2049에 맞출 정도로 젊어지잖아요. 드라마에 나오는 실장 역할은 요즘 20대 후반이 차지하고 있고, 사극의 영의정도 40대가 하니 58년 개띠들이 할 역할이 사라지는 게 현실이에요. 예전에 ‘삼포가는 길’ 같은 문학성 짙은 드라마 찍을 땐 눈길 보면서 걸어가는 장면이 1분 넘게 이어졌는데, 이제 그런 톤은 지루하다고 실종된 지 오래됐어요. 아버지 역할 하기도 애매한 시점이긴 한데, 그래도 지금까지 버텼듯, 그렇게 또 바뀐 흐름에 적응하고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요.”

조형기는 현재 예능에서 거의 하차해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당장 일거리가 떨어졌다고 조금의 조급함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방송에 써먹을 수 있는 스토리라는 카드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이보다 더한 격변의 세월도 견뎌낸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애매한’ 자신감이 눈빛과 말투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그는 자신을 개성 강한 배우로 기억하든, 재미있는 개그맨으로 기억하든 사후에 ‘그를 보면 즐거웠다’는 비문(碑文)이 새겨지길 원한다고 했다. 재미를 위해 재능을 쏟아 붓는 그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밍밍한 시대에 감초는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김고금평
김고금평 danny@mt.co.kr twitter facebook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사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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