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춥다]배달원 A씨, 살인 한파에 "배달하다 죽을 수 있겠다 생각"

한파경보가 내려진 25일 오전 9시 서울 송파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온몸을 방한도구로 감싼 채 작업을 하고 있다. / 사진=이영민 기자

"추운 건 상관없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칼바람으로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맴돌던 25일 오전 9시. 서울 송파구 건설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김모씨(54)는 애써 태연하게 말했지만 몸은 '중무장' 상태였다. 얼굴 전체를 모자와 마스크, 귀마개로 감싼 채 두 눈만 간신히 나와 있었다.


바로 옆에서 화물차 차량 통제를 하던 최모씨(51)도 추위에 단단히 대비한 모습이었다. 내복부터 점퍼까지 옷을 다섯 겹이나 껴입어 몸 전체가 바람에 부푼 풍선 같았다. 최씨는 "몸으로 돈 버는 직업이라 건강이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달 22일부터 시작된 최강 한파가 나흘째 이어지고 있지만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은 사각지대에 놓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한파에 따른 명확한 근무지침을 세워 야외 노동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25일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도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해 강원도·충남·경북 등 전국 많은 지역에 한파경보가 내려졌다. 한파경보는 영하 15도 이하 기온이 이틀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할 때 발령한다.


이번 한파는 강도나 기간 등에서 '21세기 최강 한파'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현장 노동자들이 느끼는 추위는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다. 영등포구 환경미화원 김모씨(41)는 "너무 추워서 방한 장갑 안에 비닐장갑을 끼고 일하다 보니 주부습진이 걸릴 정도"라며 "동료들도 얼굴이 얼어버려 피부가 터지고 난리다"고 말했다.

배달 대행업체에서 근무하는 하모씨(33)는 "정말 추위가 살을 파고드는 것 같아서 배달하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회사에서는 특별히 옷을 두껍게 입거나 휴식하라고 지침이 내려온 것은 없고 그냥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야외에서 추위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동상이나 저체온증 등 한랭 질환이 발생할 수 있지만 정부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22일까지 발생한 한랭 질환자는 328명, 사망자(저체온증)는 7명이다.

국회에서는 한파를 재해의 일종으로 보고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7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3건의 법안은 한파도 자연재해의 일종으로 규정한다. 정책 지원을 위한 근거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해당 법안들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한파가 왔을 경우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도 현재 2건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사업주가 작업을 중단하거나 휴게 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전문가들은 야외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가이드라인 등 신속한 조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진영 건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야외 작업을 하면서 땀으로 의복이나 신발이 젖으면 체온이 급격하게 낮아져서 저체온증이나 동상에 걸릴 위험이 크다"며 "가능한 중간 중간 휴식시간을 자주 가지면서 체온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선 대구가톨릭대 산업보건학과 교수는 "이상기온과 한파가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며 "정부나 안전보건공단에서 옥외작업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