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전격 교체'…'셀프개혁' 신호탄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현안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7.11.3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가 22일 발표한 조사 결과로 드러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법관 사찰' 의혹에 대해 법원 내부적으로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던 김명수 대법원장(59·사법연수원 15기)이 법원행정처장을 전격 교체하며 '셀프개혁'의 신호탄을 쏴올렸다.


한편 김 대법원장이 '법관 사찰'에 대해 사실상 재추가조사를 약속했지만 강제수사 권한이 없다는 한계 탓에 법원 자체 조사만으로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법원 내부에서도 검찰 수사를 수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사법행정처 수장 교체…'원세훈 재판 참여' 부담

대법원은 2월1일자로 법원행정처장을 김소영 대법관(53·19기)에서 안철상 대법관(61·15기)으로 교체한다고 25일 밝혔다. 이에 따라 사법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법원행정처장이 된 김 대법관은 7개월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는 추가조사위 발표 이후 김 대법원장의 첫 후속조치다.




통상 법원행정처장은 2년 정도 처장직을 수행하다 임기만료 시점이 가까워지면 대법관으로 복귀한 뒤 퇴임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김 대법관의 대법관 임기는 올해 11월까지여서 아직 1년 가까이 남은 상황이다. 게다가 안 대법관도 이번달에야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됐다는 점에서 법원행정처장 임명이 이례적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번 인사가 추가조사위의 조사 결과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김 대법관은 가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청와대와 대법원의 교감이 드러난 2015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댓글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3대 0 의견으로 유죄 취지 원심을 파기할 때 대법관으로서 심리에 참여했다.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앞으로 이어질 쇄신 조치를 취하기 전에 사건에 연루됐다고 의심을 살만한 인사를 핵심 라인에서 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김 대법관이 재판부 복귀를 희망했다"며 "안 대법관이 추가조사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를 맡는 것이 적절하다는 취지로 인사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3차 조사위원회 구성 검토

대법원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3차 조사위원회 구성을 검토 중이다. 김 대법원장은 전날 공식 입장문을 통해 "추가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따른 합당한 후속조치를 취하겠다"며 "필요한 범위에서 조사 결과를 보완하고 공정한 관점에서 조치 방향을 논의해 제시할 수 있는 기구를 조속히 구성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은 또 "법원 스스로의 힘으로 이번 사안이 여기까지 밝혀졌듯이 앞으로도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저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기 바란다"고 했다. 검찰 수사 등 외부의 개입 없이 법원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사후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추가조사 결과에 대한 재추가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추가조사가 이뤄진다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1차 조사, 김 대법원장이 권한을 위임한 추가조사위의 2차 조사에 이어 3번째다.

재추가조사가 실시될 경우 조사 대상은 추가조사위원회가 암호 설정 등의 문제로 들여다보지 못한 760여개의 파일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등이 될 전망이다. 김 대법원장은 전날 퇴근길 기자들로부터 '암호가 설정된 법원행정처 파일도 조사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중에 기구와 긴밀히 의논하겠다"며 여지를 열어뒀다.

철저한 조사를 위해 3차 조사위원회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직 대법관 등 한때 법원에 몸담았던 인사들을 포함시키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이 법원 자체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법원 직무상 명령만으론 진실 규명 한계

그러나 3차 조사위가 출범한다 해도 법원의 내부 조사에는 한계가 있어 모든 의혹이 밝혀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3차 조사위가 암호가 걸린 파일을 조사하려면 당시 행정처 심의관·판사들에 대한 비밀번호를 제출할 것을 직무상 명령해야 하는데, 이미 증거인멸·공용서류손상·업무방해·직권남용 등 형사 사건으로 비화된 이상 판사들이 비밀번호를 제출할지 의문이다. 형법상 비밀침해죄 문제가 걸릴 수도 있다. 이미 삭제된 파일 역시 검찰의 포렌식 과정 없이 얼마나 복원할 수 있을지, 복원된 파일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이밖에도 3차 조사위는 형사처벌 대상인 관련 문건 작성자 및 지시자, '대응방안' 실행 여부 규명과 관련자에 대한 단죄라는 과제를 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의혹의 당사자인 판사들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진술할 가능성은 낮다. 진상을 밝혀낸다 해도 관련자에 대한 수사의뢰를 하지 않을 경우 형사소송법 위반이 된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현행 법상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반드시 고발해야 한다.

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공작 사건'을 파기환송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경우 청와대와의 교감이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강제수사권이 없는 조사위가 이미 퇴임한 대법관들이나 '접촉이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대법관 또는 산하 직원들에게서 자료나 진술을 받아내기는 어렵다. 통신사에 저장되는 통화내역은 1년까지여서 이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전관 출신 한 변호사는 "관련자를 내부 징계만으로 끝내고, 비밀번호 걸린 파일을 제대로 못 들여다 볼 경우 '셀프개혁'을 제대로 하는 것 맞냐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을 정도로 진상규명이 되지 않을 경우 외부 고발 등의 형태로 검찰 수사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